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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병원 전 김민철 예수병원장 출간서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예수병원(병원장 신충식)은 전 김민철 예수병원장의 출간서가 2023 세종 도서 교양 부문 추천도서에 선정되었다고 7일 밝혔다.  이번 선정된 ‘의사 주보선’은 삶으로 선교를 보여준 한 의료선교사의 삶과 유산을 기록했으며, 김민철 저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선교 의료병원인 예수병원에서 내과 수련을 받는 동안 주보선 선교사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어 예수병원 병원장을 역임(2004~2010년) 했으며 한국누가회(CMF)이사장과 밴쿠버기독교 세계관 대학원(VIEW) 생명윤리 객원 교수직을 겸했다.   현재 인턴 서브 코리아 이사장이며 저서로 '성경의 눈으로 본 첨단의학과 의료'(아바서원,2014)가 있고, '상처받은 세상, 상처받은 치유자들'(IVP) 외 여러 권의 책을 번역 출간했다.  김병선 예수병원 홍보실장은 “우리는 예수병원 의사 주보선을 통해 환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하는 진지한 의사의 태도를 배웠다.”며 “의료선교병원으로서 생명존중과 기독의사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성장하는데 주요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밝혔다.  한편 세종도서는 매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양서 출판 활성화와 독서문화 증진을 목표로 교양 부문과 학술 부문의 우수도서를 선정해 발표하고 있으며 이는 공공도서관, 작은도서관, 대학도서관과 사회복지시설 등에 무료로 보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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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7
  • [부활절특집: 부활절 에세이] 부활이 가져온 능력
      진실로 ‘성령 받은 자’가 숨길수 없는 능력은 바로 죄 사함의 권세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오셨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19)라는 말씀으로 축복하셨다.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평강을 주셨다. 평강의 생명이 내 안에 있음을 알게 될 때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축복은 제자들의 모임 중에 받은 기름부음이었다. 제자들이 서로 교제하는 곳에 평강이 임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의 교회도 제자들처럼 모임에 힘쓰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본능이다. 성도들이 서로 모이기를 힘쓰는 것은 영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생활이 영적인 현상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지체는 서로 교통하며 연합하기를 기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개별적인 역할을 위해 택함 받지 않고 주님의 지체로 부르심을 받은 교회의 순기능에 속한다. “모이기를 힘쓰는~”(행2:46),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히10:25)는 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평강의 축복임을 알수 있다. 성령을 받으라  부활하신 주님의 두 번째 축복은 바로 주님의 생명을 우리 속에 부은 것이다. 숨을 내쉬며 주님께서 불어 넣으신 것은 성령의 생명이시다. 이 생명을 주심으로써 저들을 우리 중에 하나와 같게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한 일이 성취되었다.(요17:11) 성령을 주심으로 주님의 옆구리에서 흘리신 물의 역사를 증거하셨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주님의 살과 피로 인해 주님의 생명을 받았음을 알게 하신다.(요일5:13)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의지하여 천국 시민의 삶인 거룩한 생활을 살게 된다. 영생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성령의 능력이 상실된 힘없는 믿음이 될 뿐이다. 옛사람을 의지하는 본능적인 삶을 떠나 성령이 인도하는 새사람의 삶을 살아야 한다. 부활생명은 믿는 자 누구든지 새사람의 삶이 가능하도록 축복하셨다. 죄 사함의 권세 부활하신 주님은 성령을 받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명령하셨다. 성령을 받은 자가 행하는 일이 기사와 이적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진실로 성령을 받은 자가 숨길 수 없는 능력은 바로 죄 사함의 권세이다.   만약 우리들의 믿음으로 엄청난 역사를 이룬다 해도 이 죄 사함의 권세가 없다면 성령의 속성을 약화시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요20:23). 죄 사함의 권세는 성령께서 하시는 역사이다. 주님은 주기도문에 주님의 나라와 영광과 권세를 구하기 전에 죄 사함받는 길을 가게 하셨다.    우리는 매일 죄를 사하는 권세를 사용해야 한다. 이 권세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면 죄의 세력 앞에 무력한 신자들이 되고 말 것이다. 이 죄사함의 권세로 형제를 용납하는 만큼 용서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어둠의 권세를 물리치며 악의 사슬이 끊어지는 죄 사함의 권세를 회복하는 부활의 새 아침을 맞이하자.   이러한 일에 놀라운 영성과 축복의 주인이 바로 베드로였다. 베드로의 영성은 앞으로 지을 죄도 용서받은 죄 사함의 권세에 있었다. 부활의 아침을 새롭게 맞이하기 위해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 이 세 가지의 축복이 회복되기를 소망한다. /대전 반석교회 목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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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06
  • 이해경시집 「사랑의 향기」 화제
      이해경시인(사진)의 시집 〈삶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사랑의 향기〉를 도서출판 사랑의 장막에서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이시인은 2013년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노래〉란 첫 시집과 함께 등단했다. 그러나 2018년 『시선』 신인추천으로 재 등단한 것이다. 그는 시인이면서 목사이며, 간호사와 상담사, 선교사란 직책을 지니고 있다.        세상 속에서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형상화 행복한 삶의 여정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의 길로 인도      ‘끝없는 사랑’의 길   이해경시인은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하고 있다. 그 사랑은 순수한 사랑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오늘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의 근원’인 아가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늘은/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그 말이/너무도 어려워/깨닫지를 못한다//가보지 않았기에/그 곳을 상상할 수가 없다//하늘은/또다시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이제야/그 말의 의미를/조금씩 깨닫는 오늘이다 -「하늘의 사랑」의 전문     이 시에서는 ‘하늘’은 하나님을 상징하고, 하나님에 대한 화자의 깨달음을 표현했다. 첫연은 하나님의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은 “보라고 일러 준다”는 구절처럼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됨을 보여 준다. 제2연과 제3연은 첫 연의 가르침에 대한 깨닫지 못한 상황이다. 제4연은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에 의한 가르침이다. 하나님은 그대로 방치해 두지 않고 또다시 가르쳐 주고, 제5연에서 이제야 깨닫는 것이다. 첫 연에서 “산 너머 있는 것을”이란 구절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세계’를 말한다. 화자가 위치한 바로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 너머’란 장소를 지칭한 것은 ‘산’이 주는 신비스러움으로 ‘산 너머’를 신비스럽게 격상시켜 준다. 그 ‘산 너머’에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산 너머 있는 것을/보라고 일러 준다”란 구절은 제1연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연유한 가르침이다. 제2연과 3연은 결과이다. “그 말이/너무도 어려워/깨닫지를 못한다”(제2연)거나, “가보지 않았기에/그 곳을 상상할 수가 없다”(제3연)고 하나님을 향한 초보적인 신앙을 표현한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   기독교인의 행복한 삶은 일반적으로 의에 대한 보상으로써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 주어지는 즐겁고 복된 상태를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으로 몸과 마음이 흐뭇하고 만족하여 부족이나 불만이 없는 삶이다. 성경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으로 나와 있다     다음의 시는 행복주의적인 삶을 볼수 있다. 행동과 행위에 의해 성취되는 삶이며, 윤리적 목적 및 궁극적 목표가 행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대 앞에서/오늘의 무릎을 꿇는다/세상의 눈을 감고/세상의 귀를 닫고/빛의 음성을 듣는다//그의 앞에서/오늘의 무릎을 꿇는다/빛의 눈을 뜨고/빛의 귀를 열고/빛의 옷을 입는다.  - 「그대 곁에서」의 전문     이 시에서의 ‘그대’는 하나님을 가르킨다. 첫 연의 ‘빛’과 제2연의 ‘빛’의 의미가 다르다. 첫 연의 ‘빛’은 하나님을 지칭하고, 제2연의 ‘빛’은 화자의 ‘신앙’을 의미한다. 화자는 신앙적인 삶 속에서 행위의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을 신앙에 두고 실행하고 있다. 그것은 행복주의 자의 삶이다. 첫 연에서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나, 세상의 눈을 감고 귀를 닫는 것,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연에서 그대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신앙의 눈을 뜨고 귀를 여는 것, 신앙의 옷을 입는 것이다.    어머니·아버지의 삶 속에 나타난 사랑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시들은 ‘사랑’으로 귀결되고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 그 자체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고, 그것은 사랑에 연유한 것임을 보여 준다. 그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임을 보여 준다.      「어머니의 하루」란 시는 어머니의 일상적인 삶을 간결하게 형상화했다. 오직 가족을 위한 삶이었음을 보여 준다. “차가운 하루의 문을 열고”란 구절의 ‘차가운 하루’는 어머니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을 함축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삶이다. 또한 “우리의 밭을 일구셨다”란 구절의 ‘우리’란 화자를 비롯한 가족을 의미하고, ‘밭’은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때로는 비바람이 되고”나, “때로는 햇빛이 되어”서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인 ‘밭’을 일구신 것이다. 이 ‘비바람’과 ‘햇빛’은 어머니의 희생에 대한 표현이다. 화자는 이러한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희생을 떠올리는 오늘이다. “어머니의 의자에 앉아”란 구절은, 어머니의 삶을 돌아보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아버지의 무게」란 시는 가정을 위한 아버지의 삶을 형상화했다. 아버지의 삶을 ‘무게’로 표현했다. 무거울수록 힘든 생활임을 보여 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부터는 아버지가 가장(家長)이 되고, 가정을 이끌어 가기 때문에 아버지의 무게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세상의 세찬 비바람에”란 구절로 집약된 삶에 대한 어려운 환경이고, 그 어려움은 “쌓이고 쌓인 아픔의 세월”인 것이다. 그래서 밤마다 가족들 몰래 눈물을 흘린다. 주위 환경으로 인해 “날마다 무게를 더하고”란 구절을 반복함으로써, 가족을 위한 아버지의 삶을 극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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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16
  • ‘광고’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다, 복음의전함서 전도 플랫폼 세미나
    ◇광교선교단체 복음의전함은 들어볼까 세미나를 연다. 사진은 인천지역 세미나.   유명인 간증과 목회자들이 풀어낸 콘텐츠를 짧은 영상에 담아 지역별 각 교회서 「들어볼까」란 세미나로 새로운 전도법 소개   사단법인 복음의전함(이사장=고정민)은 광고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다음달 13일까지 전국의 교회에서 「들어볼까 세미나」를 진행한다. 코로나 팬데믹의 완화와 함께 이전에 참여했던 교회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7개 지역 교회에서 열린다. 7월 5일 10시에 고양시 일산광림교회를 비롯한 7월 7일 10시에 서울시 여의도침례교회, 7월 8일 10시에 서울시 광림교회, 7월 8일 20시에 춘천시 순복음춘천교회, 7월 11일 10시에 강릉시 강남성결교회, 7월 12일 10시에 부산시 포도원교회, 7월 13일 10시에 용인시 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 가진다.   세미나는 동 단체 고정민이사장이 대표연사로 참여한다. 전도 플랫폼 「들어볼까」 구성을 안내하고, 새신자를 교회에 오게 하는 「들어볼까」의 활용방법을 설명한다. 또한 코로나19를 겪으며 온라인 위주로 바뀐 문화의 흐름에 따라 SNS 등 미디어를 활용한 실질적인 전도 방법을 제안한다.   세미나 참석 교회에 제공되는 특별혜택도 있다. 「들어볼까」 내에 지역교회 연결 서비스인 ‘교회찾기’에 교회를 무료로 등록할 수 있다. 또한 명함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명함을 받은 사람이 교회로 찾아올 수 있게 하는 ‘복음명함’의 원본 디자인 파일이 무상으로 제공된다. 미자립교회에 제공되는 혜택도 있다. 세미나에 사전 신청한 미자립교회 중 각 지역 선착순 30교회에 복음 광고 전도지가 무료 제공될 예정이다.   동 단체 고정민이사장은 “결국 복음을 전하는 일은 교회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세미나를 통해 미디어 전도가 전국 각지 교회에서 시작되어 5천만 국민 전도운동으로 이어지고, 주님의 복음이 곳곳으로 흘러가 대한민국 교회가 새롭게 믿음을 가진 이들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고 전국 교회의 참여를 독려했다. 「들어볼까」를 통해 제안되는 새로운 전도 방식은 대한민국 복음의 불씨를 다시 한번 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편 동 단체는 지난해 12월 새로운 전도플랫폼 「들어볼까」를 공개했다. 「들어볼까」에는 유명인의 간증과 목회자들이 알기 쉽게 풀어낸 기독교 교리 콘텐츠가 5분짜리 짧은 영상으로 담겨있다. 동 단체는 “교회에 한 번도 가본 적 없거나, 기독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거부감 없이 올바르게 소개하고 전도하기 위해 「들어볼까」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동 단체는 교회에서 「들어볼까」로 복음을 전파하는 데 활용할 수 있도록 교회 대상으로 설명회를 계속 개최해 오고 있다. 기존 설명회는 사전신청한 교회를 대상으로 줌 온라인 설명회로 개최됐었다.     이전 설명회에 참여했던 목사들은 “전도에 대한 막막함이 있었는데 너무 좋은 정보와 콘텐츠를 알게 되어서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며,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쉬운 콘텐츠를 이용해서 비신자들과의 접촉점을 찾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감사하고 기대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단법인 복음의 전함은 광고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비영리 광고선교단체다. 광고라는 도구를 통하여 비신도들을 대상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노출하고 사람들의 생활권 안에서 녹아든 세상을 만들기 위해 광고선교사역의 사명을 감당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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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24
  • 기독정신과 사회사상의 변증법적 통합(5) -김말봉의
       일본에서 귀국한 청년 윤창섭은 언니 허윤숙의 애인이었다. 윤창섭의 돌연한 출현이 최순애의 생활에 일종의 활기를 불어넣어준 것이다. 언니의 애인이 왜 순애의 삶에 활력소가 되었을까. 윤창섭은 말하자면 염상섭의 <삼대> 속의 김병화와 같은 인물이었다. 당시의 유행어로 ‘마르크스 보이’인 셈이다.     그 청년 앞에서 순애는 돌연 <삼대> 속의 홍경애의 위치로 변해버린다. 술집 바커스의 여급 신분이었던 홍경애가 김병화(마르크스 보이)와의 관계를 성숙시켜 가면서 여걸의 위치로 점차 격상되듯이, 최순애 역시 윤창섭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새로운 여성 사회운동가로 서서히 변화되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참다운 동지를 얻게 되어 기뻤던 윤창섭은 최순애에게 처음엔 동지가 되어 달라고 간청하더니, 다음에는 자기 애인 허윤숙과의 합의를 거쳐서인지 윤숙의 언질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구혼 공세를 해 온 것이다. 언니(윤숙이)가 자기 애인 윤창섭을 최순애에게 넘겨주기로 작심해 버렸다는 뜻이었다.     순애가 반신반의하기도 했으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아마도 언니 허윤숙은 주의자(主義者)로서의 윤창섭이 동지애로 긴밀히 결속되어 있는 최순애와 결혼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 두 사람, 또는 세 사람 모두에게 결과적으로 좋을 일이라고 하는 판단을 했던 것 같다.    <망명녀>(1932)에서의 이런 상황 전개는 그보다 1년 앞서 나온 염상섭의 <삼대>(1931)에서의 경우와 상당히 닮아 있다. 지금껏 보아온 윤창섭·허윤숙·최순애의 삼각관계는 <삼대>에서의 이필순·김병화·조덕기의 삼각관계의 변이형태라고 볼 수 있다.     <망명녀>에선 남성 윤창섭을 가운데에 놓고 두 여성이 서로 사랑을 양보하는 모습이지만, <삼대>에서는 여성 이필순을 가운데에 놓고 남성들이 사랑을 양보하는 형국이다. <삼대>의 이런 국면이 <망명녀>에 와서 하나의 변이형태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망명녀>의 이야기로 되돌아가면, 어떻든 결과는 세 사람 모두가 순조로운 합의에 이르게 되고, 한 쌍의 남녀는 결혼 날짜까지 잡게 되었다. 그러나 결혼식 당일에 이르러 의외의 돌발 사태가 일어나고야 말았다. 최순애가 각기 두 사람 앞으로 쓴 편지들을 남겨둔 채 어디론가 잠적해버리고 만 것이다.     순애는 윤창섭의 동지들로부터 날아온 어떤 지령(암호문)을 접한 뒤, 자기 예비 신랑을 대신해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제 스스로 일방적 파혼 선언을 해버린 뒤 목적지를 향해 떠나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소설 <망명녀>는 한마디로 ‘사랑의 노래’이다. 이 사랑의 노래는 결코 애가(哀歌)일 수 없고, 찬가(讚歌)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랑의 비극을 다룬 것이 아니라 사랑의 승리를 다룬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외국의 모처에서 망명녀의 신세로 살아가는 처지이기는 하지만, 최순애는 자신이 바라서 스스로 그런 지경에 처해 있기 때문에 조금도 비극적이지 않다.     윤창섭은 결혼식 당일에 신부가 될 여인이 잠적해 버리는 불행에 잠시 처해지기는 하지만, 이 경우에도 결코 비극적이라고는 할 수 없겠다. 윤창섭이 최순애의 지극한 사랑을 당시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양보하였던 사랑을 되찾게 된 허윤숙의 경우도 결코 비극에 이른 일은 아무것도 없다. 약간의 해프닝을 치른 코믹한 감정에 그녀가 빠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또 그들 세 사람 중에 어느 누구가 그런 것 외에 다른 경망한 감정에 휘둘린 일은 있었던가? 아니, 세 사람 모두가 매우 엄숙하리만큼 진지하기만 할 뿐이다./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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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2-06-11
  • 기독정신과 사회사상의 변증법적 통합(4)-김말봉의
        김경순, 여운영 등에 이어서 전상범의 세 번째 부인이 된 바 있었고, 또한 이석현, 전상범에 이어서 세 번째 남자 이종하와 또다시 결혼을 한 바 있는 김말봉은, 이 모든 사실이 우리에게 보여주듯이, 속칭 인생의 쓴맛과 단맛은 다 경험해 본 바 있는, 어찌 보면 최적의 통속(대중) 작가 감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를테면 그 결실이 바로 그녀의 공식적인 데뷔작 <망명녀>(1932)였다고 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망명녀>를 무슨 통속소설의 샘플(모범작)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기에는 그 작품 자체가 결코 허락하지 않는, 그 결과 어느 정도의 품위는 스스로 지니고 있는 소설 작품이라고 보는 게 사실에 가까울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 이 소설 작품의 등장인물들을 중심으로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 보기로 하겠다. 김말봉의 작품 <망명녀>에는 세 명의 남녀 젊은이들이 등장하여 ‘사랑’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다. 여기서 세 명의 젊은이들이란 최순애(산호주), 허윤숙, 윤창섭 등, 두 명의 여성들과 한 명의 남성이다. 이들 세 사람 사이에는 일종의 ‘애정의 삼각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생 신분인 산호주(최순애)는 요리집 명월관에서 남자들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가야 하는 힘겨운 하루하루의 삶을 버텨 나간다.   그런데 오 주사의 몰인정과 행패를 견디다 못한 그녀는 오 주사에게 폭력적 자세로 맞서게 되고, 그 결과 순사에게 끌려가기까지에 이른다. 얼마 뒤 훈방되어 집으로 돌아와 보니 허윤숙의 명함이 놓여 있었고, 저녁때 만나자고 하는 내용의 글발도 거기에 함께 적혀 있었다. 허윤숙은 최순애(산호주)의 여학교 시절 상급생 언니였는데, 그동안 외국 유학을 갔다가 그 과정을 마치고 얼마 전 귀국했던 것이다. 이 허윤숙의 갑작스런 출현으로 산호주(최순애)는 8년 전의 과거사를 회상해 보게 된다.   C여학교 3학년 시절, 최순애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돈 십 원을 훔친 것이 발각되어 그 학교에서 퇴학당했고, 딸(그녀) 때문에 직장마저 잃어버린 아버지를 대신해 자기(그녀)가 직접 직업전선에 나서게 되었으며, 그 결과 지금의 신분, 곧 명월관의 기생 위치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 갑자기 허윤숙이 나타나 산호주에게 “너는 이제부터 자유의 몸이다.”라고 선언하였다. 내용인즉슨, 허윤숙이 요리집 명월관 주인의 요구대로 몸값 3백 원을 지불하고 산호주를 기생 신분에서 해방시켰던 것이다.   그 후 최순애는 언니 허윤숙을 따라 그녀의 집에 가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남의 집에 얹혀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녀는 점차로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명월관에서 나온 이래 잠깐 잊고 있었던 모르핀 주입의 악습마저 되살아나게 되었다. 궐련을 자기(언니) 면전에서 빨고 몰래 모르핀 주사도 맞는 최순애를 구원하기 위해 언니 허윤숙은 그녀를 데리고 교회에 나가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이끌었다.   그러나 석 달을 겨우 넘기고 최순애는 교회 출석마저 그만둬 버렸고, 하나님 앞에서의 간구(기도)까지도 ‘아이들의 숨바꼭질 장난’ 정도로 여겨 중지하고 말았다. 최순애는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자기신세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점차로 자학적인 몽상에 사로잡히고, 더할 수 없는 자신의 비운을 저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때 갑작스런 어떤 새로운 인물의 출현으로 그녀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된다. 그 새로운 인물이란 일본에서 최근 귀국한 윤창섭이란 이름의 청년이었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2-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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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10] 윤동주의 삶과 시정신을 추구 - 소강석의 「윤동주 무덤 앞에서·3」
    ▲ 시인 최규창   님의 무덤을 찾아오지 않고서야 어찌 시인이라 할 수 있으랴 그대처럼 아파하지 않고서야 어찌 시를 쓴다 할수 있으리오 부끄러움 하나 느끼지 않고 시를 썼던 가짜 시인을 꾸짖어 주십시오 눈물 없이 쓴 껍데기 시를 심판해 주십시오 참회록 없는 이 시대의 시인들을 파면해 주십시오 당신 무덤에 피어오른 동주화를 내 마음의 무덤에 심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윤동주 무덤 앞에서·3」의 전문 이 시는 일제에 저항한 윤동주의 삶과 고고한 시정신을 추구했다. 화자인 소강석시인(새에덴교회 목사)은 윤동주의 무덤 앞에서 그의 삶과 시정신을 기리고, 스스로의 시작(詩作)에 계승하려는 결의를 표현했다. 그것은 시인으로서의 삶과 시작(詩作)의 자세로 형상화시켰다. 이 시대를 사는 시인이 지녀야 할 품성(品性)을 일깨워 준다. 그것은 신앙인의 바른 삶에 대한 길을 의미한다. 이 시는 윤동주의 삶과 시정신을 전제한 후에, 화자의 시인적인 삶을 되돌아보는 형태로 구성했다. “있으랴”나 “있으리오”, 그리고 “주십시오”란 구절의 반복을 통해 윤동주의 삶과 시정신을 화자에 대한 삶과 시정신으로 극대화시킨다. 특히 “있으랴”나 “있으리오”란 윤동주의 삶과 시정신을 전제한 후에 화자인 스스로의 시인적인 삶을 되묻는다. 또한 “주십시오”도 오늘의 현재를 돌아보며 결단하고 요구하기도 한다. ‘심판’과 ‘파면’, ‘허락’은 법률적으로 판결에 대한 언어이다. ‘심판’과 ‘파면’으로 옳고 그름에 대한 분명한 결단을 내리고, ‘동주화’를 심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님의 무덤을 찾아오지 않고서야/어찌 시를 쓴다 할수 있으리오”란 구절에서 윤동주의 삶과 시정신을 표현했다. 윤동주의 고고하고 지순한 시정신을 알지 못하면 시인이 될수 없다고 단언한다. 일제의 서슬퍼런 시대에 순교자적인 각오로 시를 썼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로 십자가의 사명을 감당했다고 볼수 있다. 또한 “그대처럼 아파하지 않고서야/어찌 시를 쓴다 할수 있으리오”란 구절은 윤동주처럼 아파하지 않고서는 시를 쓴다고 할수 없다. 윤동주의 아픔이란 시대적인 상황인 나라를 빼앗긴 슬픔에서 비롯되었다. 오늘의 시인도 윤동주처럼 고고하고 지순한 시정신과 현대사회의 시대적인 아픔을 지녀야 한다고 일깨워 준다. 그리고 ‘부끄러움’이나 ‘눈물’, ‘참회록’은 윤동주의 시를 연상시키고, 윤동주의 시를 상징한 시어들이다. 이 시어를 통해 윤동주의 삶과 시정신을 떠올리고, 시인의 자세를 일깨워 준다. “부끄러움 하나 느끼지 않고”란 구절은, 「서시(序詩)」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란 구절을 떠올려 준다.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시를 쓰는 시인은 ‘가짜 시인’으로 간주한다. 또한 “눈물 없이 쓴 껍데기 시를”이란 구절은 눈물이 없는 시란 껍데기에 불과하고 기교만 앞세워 감동이 없기 때문이다.  또 “참회록 없는 이 시대의 시인들을”이란 구절은, 윤동주의 「참회록(懺悔錄)」이란 시를 떠올려 준다. 과거의 죄악을 깨달아 뉘우치고, 죄를 뉘우쳐 하나님께 고백함으로써 바른 삶과 이 시대와 함께 하는 시를 쓸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 무덤에 피어오른 동주화를/내 마음의 무덤에 심도록 허락해 주십시오”란 구절의 ‘동주화’는 화자가 윤동주의 무덤에 피어있는 꽃을 동주화로 명명한 것이다. 시인은 창조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기발한 시인적인 발상이다. 윤동주의 삶과 시정신을 동주화로 함축했다. ‘내 마음의 무덤’에 심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은, 윤동주의 바른 삶과 시정신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윤동주와 화자 간에 일체적(一體的)인 삶을 희구한 것이다.  /시인·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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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19-03-2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9] 오늘의 삶을 위한 잠언 - 김석림의 「산상수훈」
    ▲ 시인 최규창 하늬바람 눈뜨는 우이동 골짜기 4월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면증 끌어안고 절뚝거리며 일어서는 진달래꽃을 보라 삼각산 이슬 머금고 태고의 생기 품는 고깔제비꽃 풍상에도 꺾이지 않는 시리도록 투명한 미소를 마주하라 변변한 이름도 얻지 못한 채 끈질긴 목숨 연명하는 잡초 땅의 풍식(風蝕)을 막아 옥토로 가꾸는 소중한 땅방울을 기억하라 수목들과 풀꽃에 얹혀 살아가는 곤줄박이, 접동새 일용할 양식으로 풍족한 피조물의 감사기도를 들어라 그러므로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지니라 - 「산상수훈(山上垂訓)·1」 이 시는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현상을 통해 섭리하심에 대한 삶의 길을 일깨워 준다. 산에서 피어나는 진달래꽃과 고깔제비꽃, 그리고 잡초와 접동새 등이 오늘의 우리들에게 주는 메시지로 승화시켰다. 꽃과 잡초의 현상, 소중한 땀방울의 결과, 수목과 풀꽃에 얹혀 살아가는 새들의 존재가 무한한 일깨움의 지혜를 주는 메시지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처럼 오늘의 삶을 위한 잠언적인 메시지로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첫 연은 자연현상의 식물과 새 등에 신앙의 삶이 육화(肉化)된 성서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제2연은 마태복음 6장 34절을 재구성해 바른 삶의 길을 제시한다. 첫 연은 산에 서식하는 식물과 나무, 새를 통해 바른 삶의 길을 일깨워 준다. ‘진달래꽃’은 불면증을 끌어안고 절뚝거리며 일어선다고 의인화했다. 절망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이다. 또한 우이동 근처인 수유리 4·19 묘지도 함께 떠올려 주는 구절이다. 그리고 고깔제비꽃은 삼각산의 이슬을 머금고 태고적인 생기를 품었다고 형상화했다. 그래서 풍상에도 꺾이지 않고 시리도록 투명한 미소를 머금었다. 70년대의 성지처럼 여겼던 삼각산의 이슬을 머금었으니, 태고적인 생기를 품었다고도 볼수 있다. 풍상에도 꺾이지 않은 꽃의 미소는 시리도록 투명할 수밖에 없다. 잡초는 이름도 얻지 못한 채로 끈질긴 목숨을 연명하고 옥토로 가꾸는 땀방울을 기억하도록 일깨운다. 바람에 의하여 암석이나 지대가 침식되지만, 농부의 땀방울은 침식을 막아주고 옥토로 가꾸기 때문이다. 곤줄박이나 접동새는 나무와 풀꽃에 얹혀 살아가는 것은 공동체적인 삶의 길을 가르쳐 준다. 이러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일용할 양식으로 살아가고, 이러한 삶을 지닌 피조물은 감사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다. 우주의 삼라만상은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이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풍족하게 주셨기 때문이다. 제2연은 마태복음 6장 34절인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란 구절을 시적인 발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첫 행인 “그러므로”는 첫 연의 잠언적인 메시지를 구체화시키고 전환시키기 위한 방법의 구절이다.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란 구절의 ‘괴로움’은 인간이 감내(堪耐)하기 힘든 고초와 역경을 뜻한다. ‘한 날 괴로움’이란 우리의 현실에서 마주치는 온갖 어려움을 의미한다. ‘그 날에 족하니’란 그날에 주어진 것은 그날의 고통으로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지니라”란 구절은 아직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도 않은 내일을 위해 염려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세상의 염려와 걱정을 해결하기 위해 오늘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만, 내일은 언제나 다시 다가오며 따라서 내일의 문제는 결코 오늘에 처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오늘의 은혜는 오늘에 족하고 새로운 날을 맞이 하면 새로운 은혜를 입어서 살아가야 할 것임을 암시하였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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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19-03-2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8]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 - 양효원의 「어느 한 순간에」
    ▲ 시인 최규창 어느 한 순간에 머어먼 옛날부터 저를 아신 듯 저도 모르는 저를 아신다는 듯, 무척 익숙하신 다정하심으로 저에게 말을 걸어 오시네요 울게 하시고 웃게 하시고 버리게 하시고 세우게 하시고 용서하게 하시고 품게 하시네요 사랑의 이름으로 사랑의 이름으로 바람결 따라 나뭇잎이 살랑대듯이 저의 심장을 부비시며, 오늘도 저와 함께 사시네요 -양효원의 「어느 한 순간에」의 전문 이 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함께 하심을 형상화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그의 섭리에 의한 삶임을 일깨워 준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음을 깨닫도록 한다.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하는 바른 신앙인의 모습이다. 인간과 자연의 세계가 자립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배와 붙드심에 힘입고 있다는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우주와 인간을 통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연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구태여 나눈다면 3개 연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연은 1행부터 5행, 둘째 연은 6행부터 8행, 셋째 연은 9행부터 마지막 행까지이다. 첫째 연의 1행인 “어느 한 순간에”란 구절을 임의로 구분한 각 연의 첫 행에 삽입할 경우에는 이 시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눈 깜짝할 사이인 어느 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심을 스스로가 깨닫기 때문이다. “머나먼 옛날부터 저를 아신 듯 / 저도 모르는 저를 아신다는 듯, / 무척 익숙하신 다정하심으로 / 저에게 말을 걸어 오시네요”란 구절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치하고 계심을 보여 준다. 특히 “머나먼 옛날부터 저를 아신 듯 / 저도 모르는 저를 아신다는 듯”이란 구절은 이미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심을 떠올린다. 인간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그 인생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섭리와 영원한 지혜의 계획하심 아래 놓여 있었음을 일깨워 준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이미 예정되어 있었음을 깨닫게 한다. 또한 “무척 익숙하신 다정하심으로 / 저에게 말을 걸어 오시네요”란 구절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섭리하고 계심을 깨닫게 한다.  “울게 하시고 웃게 하시고 / 버리게 하시고 세우게 하시고 / 용서하게 하시고 품게 하시네요”란 구절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표현했다. 이 세상에는 상반(相反)되는 두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예외없이 작용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삶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뜻에 따라 삶을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도록 한다.  “사랑의 이름으로 / 사랑의 이름으로 / 바람결 따라 나뭇잎이 살랑대듯이 / 저의 심장을 부비시며, 오늘도 / 저와 함께 사시네요”란 구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나타냈다. 우리의 삶과 활동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사랑이다. 창세기 26장 28절에서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란 구절을 연상시킨다. 이 시에서 보여준 것처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그의 능력을 제한받지 않고, 완전하게 행하신다. 무슨 일이 든지 못하는 일이 없고,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시는 능력의 소유자이다. 자신의 능력을 제한받지 않고 완전하게 행하시고, 원하시는 것을 다 이루시는 절대적인 권능을 가지셨기 때문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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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2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7] 낮은 자세의 겸손한 신앙 - 홍계숙의 「죄인」
    ▲ 시인 최규창   지난 사순절 의롭게 살겠노라 성찬에 참여했지만 뒤돌아 보니 입을 열어 고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믿음의 바구니 열매있다 한들 당신 앞에 내어놓 기엔 부끄러운 것뿐입니다 —「죄인」의 전문 홍계숙의 「죄인」은 화자인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한 시이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신앙의 삶을 고백했다. 순수하고 겸손한 신앙에서 비롯된 참회하는 바른 신앙인의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며, 그 죄인임을 사유(思惟)하도록 일깨워 준다. 성경에서 죄인을 판별하는 기준은 하나님이시다(창세기 13장 13절). 이는 도덕적 윤리적인 죄를 범한 자를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죄, 즉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를 가르켜 죄인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 시에서 추구하는 것은, 이러한 기준의 죄인보다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깨달음이다. 그것은 스스로를 죄인으로 치부해 버린 순수한 신앙에서 연유(緣由)한다.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하고 낮은 신앙인의 자세로 죄인임을 고백한 것이다. 로마서 3장 10절에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1연은 사순절에 참여한 성찬식은 지금까지의 죄를 회개하고, 이제는 의롭게 삶을 영위하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사순절에는 누구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받으심’과 ‘죽으심’을 회상하면서 보낸다. 이 기간에는 참회와 금식으로 지키고, 구제와 경건훈련으로 보내기도 한다. 이 기간에 갖는 성찬식은 예수의 십자가죽음을 기념하는 의식이다. 이때에 나눈 떡은 주님의 몸을, 포도즙은 주님의 피를 기념한다. 이 의식에서 참회를 통해 죄인이었던 스스로는 죽고,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지난 사순절/의롭게 살겠노라/성찬에 참여했지만”이란 구절은 의롭지 못했던 스스로를 참회하고 의롭게 살겠다는 결심으로 성찬식에 참여했다고 고백한 삶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와 간구, 신앙의 삶에 대한 다짐이다. 그러나 “성찬에 참여했지만”이란 구절은, “의롭게 살겠노라”란 다짐을 지키지 못함에 대한 회개가 함축되어 있다. 그것은 제2연에서 구체화된다. 제2연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한 삶이다. 1연의 마지막 행인 “성찬에 참여했지만”이란 구절에서 주는 망설임의 여운과 “되돌아 보니”란 구절에서 죄인의 삶이었음을 암시해 준다. “입을 열어/고할수 없”을 정도의 죄인이었다고 고백한 것이다. 죄인된 자의 참담한 심정을 표현했다. 그것은 순결한 마음, 그리고 진실한 삶에서 생성(生成)된 고백이다. 일상의 생활속에서 거짓과 허식(虛飾)이 없는 삶이었음을 보여 준다. 제3연은 하나님 앞에서 지금까지의 신앙적인 삶에 대한 결과를 ‘부끄러운 것뿐’으로 함축해 표현했다. “믿음의 바구니 열매”는 신앙적인 삶에 대한 결과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부끄러운 것뿐”으로 스스로 자신을 책망한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열매를 내어놓기에는 부끄러운 것뿐으로 치부하고, 스스로의 잘못을 꾸짖는 자발적인 행위이다. 하나님이 먼저 책망하기 전에 스스로 자책하는 회개었음을 유추(類推)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믿음의 바구니 열매있다 한들”이란 구절처럼,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다가서는 신앙을 보여 준다. 이러한 이 시는 스스로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한 신앙의 삶이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낮은 자세의 겸손한 삶에서 비롯되고 있다. 신앙인이 지녀야 할 모습으로 승화시켰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낮은 자세의 순수한 삶을 지녀야 한다고 일깨워 준다. 특히 간결한 이미지와 함축된 메시지는 그의 시가 지닌 특징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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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19-03-2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6] 성숙한 신앙의 삶을 위한 간구 - 김행숙의 「새 아침에」
    ▲ 시인 최규창   지혜의 근본을 찾으러 나 여기 왔습니다 발걸음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속사람의 비밀을 날로 새롭게 하시고/당신 닮은 사랑 내게서 피어나게 하소서 간구하옵기는 오로지 당신의 온유 그뿐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새 아침의 소망을 간절히 말씀드리나이다 —「새 아침에」의 전문 김행숙의 「새 아침에」란 시는 새해의 아침에 드린 기도이다. 성숙한 신앙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간구한 것이다. 이 삶을 위해 ‘지혜의 근본’을 찾기 위해 하나님 앞에 왔다고 고백한다. ‘속사람의 비밀’을 새롭게 하고, ‘당신 닮은 사랑’과 ‘당신의 온유’를 지니도록 간구한다. 성숙한 신앙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새해의 소망임을 고백한 것이다. 그것은 바른 신앙의 삶에서 비롯된 고백과 간구이다. 이 기도는 고백과 간구로 구성되어 있다. “지혜의 근본을 찾으러/나 여기 왔습니다/발걸음을 인도하여 주옵소서”나,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새 아침의 소망을/간절히 말씀드리나이다”란 구절은, 하나님 앞에 스스럼없이 털어 놓은 고백이다. 그리고 “속사람의 비밀을 날로 새롭게 하시고/당신 닮은 사랑 내게서/피어나게 하소서”나, “간구하옵기는/오로지 당신의 온유/그뿐”이란 구절은, 하나님 앞에 간구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 고백을 통해 진솔한 마음을 전달하고, 간구하므로써 응답이 온다는 견고한 믿음을 보여 준다. 제1연은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거듭난 삶과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랑을 지니도록 간구한다. 바른 신앙인의 삶을 소망한 것이다. “지혜의 근본을 찾으로/나 여기 왔습니다”란 구절은 태초적 부터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하나님 앞에 왔음을 고백한다. 이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바탕, 즉 시간과 공간이 창조되기 이전인 태초의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속사람의 비밀을 날로 새롭게 하시고”란 구절의 ‘속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사람의 심령(에베소서 3장 16절),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사함을 받아 새롭게 창조된 새사람(에베소서 4장 24절)을 의미한다. 또 “당신 닮은 사랑 내게서/피어나게 하소서”란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스스로가 지닐 수 있도록 간구한 것이다. 또한 “피어나게 하소서”란 구절은 사랑의 실천을 의미한다. 간직한 것만이 아니라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닮은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했다.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보여주신 신적(神的)인 사랑이며, 자기를 돌보지 않고 이웃을 위해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아가페적인 사랑이다(요한일서 4장 10절). 스스로에게서 피어날 수 있는 아가페적인 사랑을 간구한 것이다. 제2연은 이 세상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지닐 수 있도록 간구한다. “당신의 온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이 ‘온유’는 부유하고 거만한 사람들에 반대되는 진실로 경건한 사람들의 태도를 묘사하는 말이다. 따라서 구약에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의 태도나 타인에게 보이는 태도를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또한 ‘온유’란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묘사하는 데서 완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이 시는 하나님 앞에 새해의 소망을 간구한 것이다. 주변과 가정, 물질적 요구의 외적인 삶에 대한 간구가 아니다. 내적인 성숙을 위한 간구로 성숙한 신앙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모습을 보여 준다. 바른 신앙인의 자세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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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19-03-2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5] 한 해의 삶에 대한 회개와 간구 - 유승우의 「한 해를 보내며」
    ▲ 시인 최규창   창백하게 여위어가는 햇살이 빈 들판을 서성거리며 주기도문을 외우고 있다. 갈대꽃들이 강가에 모여 서서 하얗게 손을 흔들며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말씀을 외우고 있다. 가랑잎들이 아늑한 곳에 모여 앉아 바스락, 바스락 마른 목소리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소곤거리고 있다. 앞진 겨울나무들이 바람 앞에 서서 앙상한 가지들을 쳐들고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기도를 드리고 있다.                      —「한 해를 보내며」의 전문 이 시는 한 해를 보내는 길목에서, 지난 한 해의 삶을 되돌아보며 드린 기도이다. 자연적인 현상속에서의 생명을 다한 빈 들판과 하얀 갈대꽃, 그리고 가랑잎과 겨울나무의 앙상한 가지를 비유로 한 해동안의 삶을 되돌아보고 있다. “창백하게 여위어 가는 햇살이/빈 들판을 서성거리며”나, “갈대꽃들이 강가에 모여 서서/하얗게 손을 흔들며”, 그리고 “가랑잎들이 아늑한 곳에 모여 앉아/바스락, 바스락 마른 목소리로”나, “잎진 겨울나무들이 바람 앞에 서서/앙상한 가지들을 쳐들고”란 구절은. 한 해를 보내는 길목에서의 자연적인 현상이다. 그것은 화자의 회한(悔恨)으로 환원시켜 형상화했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고, 헛된 삶에 대한 회개와 간구로 신앙적인 삶을 일깨워 준다. 이 시는 연을 나누지 않았지만 임의로 나눈다면, 네 개 연으로 구분할 수 있다. 1행부터 3행까지를 제1연으로 볼수 있다. 제2연은 4행부터 7행, 제3연은 8행부터 11행, 제4연은 12행부터 마지막 행인 15행까지이다.  제 1연에 해당할 수 있는 “창백하게 여위어가는 햇살이/빈 들판을 서성거리고”란 구절은, 화자가 한 해를 보내는 심정을 보여 준다. 한 해를 되돌아보는 삶을 비유한 것이다. 빈 들판을 서성거리는 삶은, ‘주기도문’으로 기도를 할수 없는 상황이다. 이 기도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고, 오늘날 기도의 표준이며 모범이다. 이 기도의 내용처럼 하나님의 이름이 찬양을 받고, 천국이 속히 임하기를, 그리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고, 일용할 양식과 죄용서, 유혹에서의 구원과 기도의 응답을 간구한 것이다. 또한 “갈대꽃들이 강가에 모여 서서 하얗게 손을 흔들며”란 구절은, 한 해를 보내는 이별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하얗게 손을 흔들며”란 떠나보내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를 외우는 것은, 한 해동안에 지녔던 욕심이나, 모든 것을 깨끗하게 비우는 자세이다. 또 “가랑잎들이 아늑한 곳에 모여 앉아/바스락, 바스락 마른 목소리로”란 구절은 허무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푸른 잎들이 낙엽이 되어 떨어진 가랑잎들은 생명을 다한 것이다. 바람이나 사람의 발에 밝히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도 생명이 다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난 한 해의 허무한 삶을 의미한다. 그래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란 구절로 표현했다. 전도서 1장 2절인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란 구절중에서 인용했다. 이러한 이 시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그리고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란 구절처럼 깊은 사유의 일깨움을 준다. 주기도문과,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는 것은, 신앙이 생활화된 삶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른 신앙인의 삶에서 생성(生成)된 자세이다.  /시인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19-03-2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4] 크리스마스를 맞은 교회의 정경 - 이매수의 「크리스마스」
    ▲ 시인 최규창   오늘 그 곳에는 하늘의 빵을 나눠 준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아이들이 오고 있다 오늘 그 곳에는 하늘의 소식을 알려 준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청년들이 오고 있다 오늘 그 곳에는 멀리 떠났다가 돌아온 친구도 있고 사랑하는 딸도 있고 이웃집 아저씨도 있고 어머니 빈 자리도 있다 오늘 그 곳에는 하늘 가는 밝은 길을 훤히 비춰주는 등불이 대낮처럼 켜져 있다      - 「크리스마스」의 전문 이매수의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를 맞은 교회의 정경(情景)을 형상화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어린이와 청년들, 그리고 멀리 떠났다가 돌아온 친구와 사랑하는 딸, 이웃집 아저씨도 참석하고, 어머니의 빈 자리를 떠올리며 예배를 드리는 광경이다. 크리스마스이기 때문에 모두가 참석한 것이다. 이러한 크리스마스를 맞은 교회는 하늘나라의 밝은 길을 훤히 비춰주는 등불이 대낮처럼 켜져 있다. 크리스마스의 교회정경을 풍경화로 그리듯이 선명하게 그려 준다. 이 시의 각 연마다 반복된 “오늘 그 곳에는”이란 구절의 ‘오늘’은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이고, ‘그 곳’은 화자가 다니는 교회당이다. 제1연과 제2연의 “십자가를 바라보고”란 구절은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빨간 불이 켜진 십자가이다. 이 반복을 통해 아기 예수가 탄생한 날인 크리스마스와 이 날을 맞은 교회당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준다. 제1연은 크리스마스를 맞은 교회에서는 어린이들에게 크리스마스선물인 빵을 나눠 준다. 어린이들은 빵을 선물로 받기 위해 십자가가 보이는 교회에 모여 든다. 이 빵은 세상적인 빵이 아니라, 신앙적인 의미를 부여한 ‘하늘의 빵’으로 표현했다. 어렸을 적에 크리스마스 때마다 선물로 주던 빵과 과자를 받던 추억을 떠올려 준다.  제2연은 ‘하늘의 소식’을 듣기 위해 청년들이 모여 든다. 이 날은 크리스마스이기 때문에 아기 예수의 탄생과 그의 생애를 통한 구원의 소식을 전할 것이다. 이 ‘하늘의 소식’은 구약에서 선지자에 의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인용되고,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의미한다. 제3연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예배에 참석한 자들이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직장과 학교 등으로 멀리 떠났다가 돌아온 친구와 사랑하는 딸, 그리고 이웃에 사는 아저씨도 앉아 있다. 이들은 평소에 보지 못했던 자들이다. 멀리 떠났다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예배에 참석한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앉아 있지만, 그 자리에 앉아 계셔야 할 어머니는 보이지 않고 빈 자리로 남아 있다. 이미 하늘나라로 떠나신 어머니를 ‘어머니 빈 자리’로 떠올려 준다. 제4연은 어느 교회나 크리스마스를 맞은 밤에는 대낮처럼 불을 켜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예배와 축하행사를 가진다. 축제의 분위기로 진행한다. 예수가 이 땅에 오신 것은, 죄인인 모든 사람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오셨다. 이 시는 크리스마스를 맞은 교회의 정경과 하늘나라 가는 길의 밝은 길을 일깨워 준다. 하늘나라에 가는 길도 여러 갈래의 길이 있지만, 크리스마스 때에 가르쳐주는 길은 지름길이다. “하늘가는 밝은 길을/훤히 비춰주는 등불”로 표현한 것이다. 예수가 이 땅에 오심으로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셨기 때문이다. 하늘의 양식인 ‘하늘의 빵’이나 ‘하늘의 소식’은 하늘나라에 가는 밝은 길의 가장 필요한 자산이다. 이 시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그의 시들은 이미지가 선명하고, 군더더기 없는 시어와 정갈한 구성이 특징이다.  /시인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19-03-2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3] 성숙한 삶과 하나님의 사랑 - 김현승의 「절대 신앙」
    ▲ 시인 최규창   당신의 불꽃 속으로 나의 눈송이가 뛰어 듭니다 당신의 불꽃은 나의 눈송이를 자취도 없이 품어 줍니다. - 「절대 신앙」의 전문 이 시는 하나님과 ‘나’와의 절대적인 관계를 형상화했다. 화자인 ‘나’는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앙을 표현하고, 하나님은 ‘나’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을 보여 준다. 순수하고 순결한 신앙인의 모습이다. 성숙한 신앙인의 삶과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추구했다. 「절대 신앙」이란 제목자체가 주는 것처럼, 아무 것에도 따르지 않고 모든 조건을 초월하여 독립한 절대적인 신앙을 의미한다. 오직 하나님만을 향한 순수하고 순결한 신앙이다. 성숙한 신앙인의 삶에서 생성(生成)되는 신앙임을 일깨워 준다. 이러한 이 시에 쓰여진 ‘불꽃’과 ‘눈송이’란 시어, 그리고 “당신의 불꽃”과 “나의 눈송이”, “뛰어 듭니다”와 “품어 줍니다”란 구절의 의미를 먼저 살펴보면, ‘하나님’과 ‘나’에 대한 관계의 상승작용에 대한 매개체로 활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나’가 지닌 절대적인 신앙에 의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앙과 하나님의 사랑이 절정에 이르고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의 ‘불꽃’과 ‘눈송이’는 상극관계이다. ‘불꽃’은 ‘불’이고, ‘눈송이’는 ‘물’이다. 상생(相生)관계가 아니다. 오행설(五行說)에 의하면 ‘블’과 ‘물’은 상극관계로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충돌하기 때문이다. ‘불’의 크기와 ‘물’의 수량에 따라 이기고 질수가 있다. ‘불꽃’과 ‘눈송이’는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불꽃’은 ‘눈송이’를 흔적도 없이 녹여 버리기 때문이다. ‘불꽃’속으로 뛰어든 ‘눈송이’는 그대로 녹을 수밖에 없고, 자취도 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자연적인 현상이다. ‘불꽃’과 ‘눈송이’처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앞에 ‘나’란 ‘불꽃’에 녹여지는 ‘눈송이’같은 존재이다. 그것은 신앙적인 현상이다. 자연적인 현상과 비교할 수 없는 관계인 것을 보여주는 시이다. ‘눈송이’가 ‘불꽃’ 속으로 뛰어 들고, ‘불꽃’은 ‘눈송이’를 자취도 없이 품어주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께로 가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받아주는 사랑을 깨닫게 한다. “당신의 불꽃”은 하나님의 섭리나 사랑, 즉 하나님의 가장 큰 권능의 세계이다. 그것은 절대자의 절대적인 세계이며, 하나님 그 자체이다. 그리고 “나의 눈송이”는 순수하고 순결한 화자인 ‘나’이다. ‘눈송이’는 어느 형체보다도 때가 묻지 않았기 때문에 깨끗하고 순수하며, 순결한 이미지를 떠올려 준다. 첫 연의 “뛰어 듭니다”나, 둘째 연의 “품어 줍니다”란 구절은, 아무런 조건이나 제약이 붙지 아니하는 절대적인 행위이다. “뛰어 듭니다”란 화자인 ‘나’가 하나님에게 안기는 행위이고, “품어 줍니다”란 ‘나’를 품어주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했다. 이러한 이 시의 첫 연은 하나님의 세계 속에 뛰어드는 삶을 형상화했다. “뛰어 듭니다”란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벌적인 행위이다. 그것은 자발적인 신앙의 삶임을 보여 준다. 성숙한 신앙인의 삶에서 비롯될 수 있다. 둘째 연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에 의해 구원되었다는 신념을 형상화했다. “자취도 없이 품어 줍니다”란 하나님의 사랑에 연유한 자녀임을 보여 준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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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2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2] 행복한 가정과 사랑의 삶 - 임만호의 「오늘 아침 · 2」
    ▲ 시인 최규창   한 날이 나에게 왔습니다. 나의 식탁에 나의 배를 채울 빵과 물이 한 잔 가득합니다 나의 허물을 감싸 줄 아내 나를 꼭 필요로 하는 해맑은 자녀가 있습니다 내 인사를 받아 줄 이웃을 오늘도 만날 것입니다 당신의 말씀이 나의 생명의 되었습니다. - 임만호의 「오늘아침 · 2」 전문 이 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에 연유한 아름다운 가정의 정경(情景), 그리고 신앙이 생활화된 삶을 보여 준다. 가장(家長)인 화자가 하나님이 주신 오늘의 한 날을 시작하는 아침에 아침식탁과 아내, 그리고 자녀와 이웃의 모습을 떠올린다. 행복한 가정과 사랑의 삶에 의한 하루의 일과이다. 생활화된 신앙의 삶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 날이 나에게 왔습니다”란 하나님께서 오늘의 하루를 주셨다는 의미이다. ‘왔습니다’는 자의(自意)에 의한 것이 아니고 타의(他意)인 하나님에 의해 주어졌음에 대한 신앙의 자각(自覺)에서 생성된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그것은 스스로가 맞이 하고 차지한 것이 아니라, 저절로 주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사랑이다. 믿는 자들의 삶과 활동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인간에 대한 사랑의 배려이기 때문이다.  “나의 식탁에 / 배를 채울 빵과 / 물이 한 잔 가득합니다 / 나의 허물을 감싸줄 아내 / 나를 꼭 필요로 하는 해맑은 자녀가 있습니다”란 구절은 아침식탁과 가족의 모습을 떠올린다.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의 풍경이다. 풍경화를 가까이서 보듯이 선명하게 보여 준다. 아침식탁이 ‘빵’과 ‘물의 한 잔’으로 단조롭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시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풍성한 식탁이다. 부수적인 음식이 생략되었지만, 배를 채울 만큼의 영양적인 요소를 갖춘 음식이 차려져 있다고 연상된다. ‘배를 채울’이나 ‘가득’이란 의미가 풍성함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의 허물을 감싸 줄 아내”란 구절은 “내 허물을 주머니에 봉하시고 내 죄악을 싸매시나이다”(욥기 14장 17절)란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려 준다. 바른 부부관계의 모습이다. 서로가 허물을 감싸주고, 존중하는 관계임을 암시해 준다. 그것은 신앙의 삶이 작용한 행위인 것이다. 또 “나를 꼭 필요로 하는 / 해맑은 자녀가 있습니다”도 자녀사랑에 대한 표현이다. 자녀양육은 부모의 책임이고 의무임을 인식시켜 준다. “해맑은 자녀”로 표현한 것은, 바른 자녀교육으로. 순수하게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내 인사를 받아 줄 이웃을 / 오늘도 만날 것입니다”란 구절은 공동체적인 삶을 암시한다. 이웃이 외면하지 않고 인사를 받아주는 것은 친근한 관계이거나, 신앙의 생활화로 지닌 품성때문이다.  “당신의 말씀이 / 나의 생명이 되었습니다”란 구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란 요한복음 1장 14절에 근거해 형상화했다. “당신의 말씀이 / 나의 생명”이란 “말씀이 육신이 되어”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성육신(成肉身)을 떠올린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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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25
  • [한국 기독교시 다시 읽기 1] 어머니신앙의 유산 - 박목월의 「어머니에의 기도·3」
    ▲ 시인 최규창   당신의 목에 거신 십자가 목걸이의 무게를 오늘은 제 영혼의 흰 목덜미에 느끼게 하옵소서 -「어머니에의 기도·3」의 전문 이 시는 ≪어머니≫(1967년, 삼중당 펴냄)란 시와 에세이집에 수록되어 있다. 「어머니에의 기도」란 제목의 연작시 여덟편중 세 번째는 가장 짧은 구성으로 하나님 앞에 어머니의 신앙을 유산으로 이어 받기 위한 기도이다. 어머니의 목에 거신 십자가 목걸이는 어머니가 지닌 신앙의 상징으로 인식시켜 준다. 그 무게로 환산한 어머니의 신앙을 화자의 영혼의 목덜미에 느끼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이러한 십자가의 무게로 상징된 어머니의 신앙을 이어 받도록 기도한 것이다. 지혜로운 언어의 운용(運用)으로 시와 기도의 한계성을 헐어버렸다는 평가이다. 십자가는 고대 카르타고에서 사형을 집행할 때 사용한 형구였으며, 고통과 죽음을 가져다가 주는 형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으로 인해 사랑과 속죄와 자기희생의 표상으로 승화되었다. 기독교의 소망의 기초가 되었으며, 새로운 신앙의 최고의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다.  이 시에서의 “십자가 목걸이의 무게”란 어머니의 신앙에 대한 깊이를 의미한다. ‘무게’로 표현된 것은 신앙의 수준을 형상화했다. 그것은 견고한 믿음의 신앙임을 암시해 준다. ‘무게’로 환산할 수 있을 만큼 계산되기 때문이다. 특히 어머니의 신앙을 ‘무게’로 환산한다는 것은, 성숙한 언어의 운용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제 영혼의 흰 목덜미”란 구절의 표현은 깨끗하고 순수한 영혼임을 고백한 것이다. ‘흰 목덜미’란 깨끗한 이미지로 어머니의 신앙을 받아 들일수 있는 텅빈 공간이다. 그것은 십자가 목걸이의 무게로 상징된 어머니의 신앙을 그대로 가장 깨끗하고 순수한 영혼에 받아들이기 위한 자세이다. 이러한 이 시는 어머니가 지닌 신앙을 목에 거신 십자가 목걸이로 함축시켰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그 신앙을 스스로의 영혼이 느낄 수 있도록 간구한 것이다. 어머니의 신앙에 대한 유산이다. 이러한 박목월은 ‘어머니’를 주제로 많은 시를 썼다. 그의 기독교시 대부분이 어머니의 신앙에 대해 노래하고 있으며, 스스로의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어머니≫(시 74편, 에세이 2편 수록)란 시와 에세이집에서 수요일 밤의 예배와 고향의 개울가를 통해 어머니에 대한 회상을 떠올리며, 어머니의 신앙을 통한 스스로의 신앙을 반추해 시와 에세이로 썼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신앙시집인 ≪크고 부드러운 손≫(71편 수록)이 출판되었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이 책은/어머니께서 유물로 남겨주신/성경이다./이 두툼한 성경을/사경회로 부흥회로 다니시며/돋보기 너머로 읽으시던/그 책이다. - 「어머니의 성경」 에서 이 시집에 수록된 「어머니성경」은 ‘어머니의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은총이 3대로 이어질 것을 간구한다. ‘어머니의 성경’에 집약된 ‘어머니의 신앙’은 시간을 초월해 ‘어머니’라는 의미 속에서 확대시켰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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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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