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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산책]한강,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 (17)
치열이 고른 이를 드러내며 그가 부하를 향해 말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진에서 이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건, 이렇게 가지런히 옮겨놓은 게 아닙니다. 한줄로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시킨 대로 두 팔을 들고, 줄을 맞춰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132-133쪽) 그들이 도청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은 내면속 양심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그들의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느꼈다. 도청의 어린 학생들까지 그 양심의 보석을 죽음과 맞바꿔도 좋다고 여겼을 것이다. 동호가 온다. 넋이 온다 상무대 공터에 군법재판소가 지어졌다. 최종 조서가 넘어간 지 열흘 만에 재판이 열렸다. 하루에 두차례씩 닷새 동안 재판이 열렸다. 한 번에 약 삼십 명씩 들어가 선고를 받았다. 재판장님이 입장하십니다. 서기의 말이 떨어지자 앞문이 열리며 법무장교 셋이 차례로 들어왔다.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아있던 영재가 소리 죽여 흐느끼듯 애국가의 첫 소절을 부르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미 합창이 시작되었다. 죽은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땀과 피와 고름이었던 피고인들이 조용히 노래하는 동안 무서운 군인들이 제지하지 않았다. 그들이 노래를 끝마칠 때까지, 소절과 소절 사이마다 위태한 침묵이 풀벌레 소리와 함께, 간이재판소의 서늘한 공기 속에 도사리고 있었다. 어린 영재는 지난 십년 동안 여섯차례 손목을 그었다. 매일 밤 수면제를 술에 타서 먹고 잤다. 그 어린 영재는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마 영원히 살아서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김진수와 교대 복학생 나는 비녀 꽂기, 통닭구이, 물고문, 전기 고문을 당하고 수사관이 원하는 거짓 자백을 했다. 그들은 한줌의 식사를 나눠 먹었다. 밥알 하나, 김치 한쪽을 두고 짐승처럼 싸우지 않기 위해 인내하며 숟가락질을 했다. 계엄군은 그들을 굶기고 고문하면서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깨닫게 하려 했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란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김진수는 5.18 이후 고문의 후유증으로 10년을 버티다가 자살했다. 그는 유서와 도청 앞마당에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 직선으로 쓰러져 죽어 있는 아이들이 찍힌 사진을 남겼다. 한강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했다. 5월 광주의 열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작가는 열 살이었다. 한강은 초등학교만 다섯 곳을 다녔다고 한다. 이사를 자주해서이다.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대신해 중학교 교사 봉급으로 손아래 형제들을 맡아 키웠던 아버지가 막내고모까지 대학을 졸업시키면서 글쓰기에만 전념하였다. 한강은 가난했지만 한승원의 서가에 있는 갖가지 책들을 읽으며 공상을 했다. 불꺼진 방안에서 홀로 머리를 굴렸다. 한승원이 광주의 누군가를 조문하러 갔다가 그 도시의 터미널에서 구했다는 사진첩을 몰래 펼쳤다.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했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어린 한강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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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6)
김진수가 자신의 총을 챙겨 굳은 얼굴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 너는 돌아오지 말아라. 그러나 짐작과 달리 그는 삼십분이 채 지나지 않아 돌아왔습니다. 나갈 때와는 달리 긴장이 완전히 풀린 얼굴이었습니다. 밀려오는 졸음을 견딜수 없는 듯 가늘게 뜬 눈으로 총을 벽에 세워 놓더니, 창 아래 놓인 인조가죽 소파에 모로 누워 잠들어 버렸습니다. 내가 흔들어 깨우자 신음하듯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조금만 잘께요. 이상한 일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도 별안간 기운이 빠진 듯 벽에 기대앉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둘 꾸벅꾸벅 졸기 시작 했습니다. 나도 막막한 마음이 되어 김진수가 누운 소파 옆에 웅크려 앉았습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졸음이 오기는커녕 신경이 가장 날카롭게 곤두서야 할 시간, 냉정한 정신력에 의지해야 할 그 시간에, 우리들은 눈도 귀도 없는 뭉클뭉클한 잠 속으로 정신없이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110-111쪽) 대학생 김진수는 도청이 진압되고 체포되어 7년형을 받고 이듬해 성탄절까지 특사로 석방되었다. 김진수는 여성적인 외모로 변칙적인 고문을 더 당했다. 성기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게 하고 나무 자로 내려 치겠다며 위협당했다. 하체를 발가벗기고 영창앞 잔디밭으로 데려가, 팔을 뒤로 묶고 엎드려 있게 했다. 굵은 개미들이 세시간 동안 김진수의 사타구니를 물었다. 그는 석방된뒤 매일 밤 벌레와 관련된 악몽을 꾸었다. 김진수와 한조가 되어 도청을 지키다가 체포되어 9년형을 받았던 스물세살의 교대 복학생의 증언이다. “적당한 때 너는 항복해라. 알겠지. 항복하라고. 손들고 나가. 손들고 나가는 애를 죽이진 않을 거야” 김진수는 도청을 빠져 나가지 않은 중학생 아이에게 마지막 순간에 항복해서 목숨을 건지라고 설득했다. 가장 길었던 5월의 깊고 검은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외신기자가 찍은 사진중에 직선으로 쓰러져 죽은 아이들이 보였다. 군인들의 명령대로 이층 복도에 머리를 박고 있던 우리들이 도청 마당으로 끌려내려간 건 동틀 무렵이었습니다. 뒤로 손이 묶인채 마당 가장자리에 일렬로 무릎 꿇고 앉은 우리들에게 한 장교가 다가왔습니다. 그는 흥분해 있었습니다. 한사람씩 군화로 등을 밟아 흙바닥에 머리를 박게 하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씨팔, 내가 월남 갔다 온 사람이야. 내 손으로 죽인 베트콩 새끼들이 서른명도 넘는다, 더러운 빨갱이 새끼들. 그때 김진수는 내 옆에 있었습니다. 장교가 김진수의 등을 밟자, 하필 자갈에 찧은 이마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다섯명의 어린 학생들이 이층에서 두 손을 들고 내려온 것은 그때였습니다. 계엄군이 대낮같이 조명탄을 밝히며 기관총을 난사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소회의실 캐비닛에 숨으라고 명령했던 네명의 고등학생과 소파에서 김진수와 짧은 실랑이를 벌였던 중학생 이었습니다. 더 이상 총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들은 김진수의 말대로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러 내려온 것이었습니다. 저 새끼들 봐라, 김진수의 등을 밟고 있던 장교가 여전히 흥분한 채 소리쳤습니다. 씨팔 빨갱이들, 항복이다 이거냐? 목숨은 아깝다 이거냐? 한발을 여전히 김진수의 등에 올린 채 그는 M16을 들어 조준했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학생들에게 총을 갈겼습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봤습니다. 씨팔, 존나 영화 같지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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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5)
시가지를 벗어난 트럭은 어둑한 벌판 가운데로 난 텅빈 길을 달렸어. 참나무들이 우거진 낮은 언덕길을 오르자 철문이 나타났어. 트럭이 잠시 멈추자 보초병 둘이 경례를 붙였어. 보초병들이 철문을 열 때 한번, 닫을 때 다시 한번 길고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렸어. 트럭은 거기서부터 좀더 언덕길을 올라가, 단층 콘크리트 건물과 참나무 숲 사이 공터에서 멈췄어. 그들이 운전석에서 걸어 나왔어. 트럭 후미의 잠금쇠를 푼 뒤, 다시 2인1조로 우리들의 팔다리를 잡고 나르기 시작했어. 턱으로, 뺨으로 미끄러지며 매달려 내 몸을 따라가면서 나는 불 켜진 단층 건물을 올려다 봤어. 무슨 건물인지 알고 싶었어. 여기가 어디인지, 지금 내 몸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공터 뒤의 덤불숲 사이로 그들은 들어갔어. 상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지시하는 대로 다시 열십자로 차곡차곡 몸들을 쌓아올렸어. 내 몸은 아래에서 두 번째에 끼여 납작하게 짓눌렸어. 고개가 뒤로 꺾인 채 눈을 감고 반쯤 입을 벌린 내 얼굴은 숲 그늘에 가려 더 창백해 보였어. 맨위에 놓인 남자의 몸에다 그들이 가마니를 덮자, 이제 몸들의 탑은 수십개의 다리를 지닌 거대한 짐승의 사체 같은 것이 되었어. (46-48쪽) 정대는 이미 죽어 혼만 있는 상태에서 5.18 희생자들의 죽음을 증언한다. <소년이 온다>의 등장인물은 고립된 상황에서도 타인의 삶과 죽음을 관찰하고 증언한다.동호는 정대의 삶을, 정대는 공터에 버려진 시신들을 증언한다. 한강 작가는 5월 광주를 증언하는 900여 명의 증언록을 구해, 약 한 달에 걸쳐 매일 아홉 시간씩 읽어 완독했다. 광주 뿐만이 아니라 국가 폭력의 다른 사례와 자료를 구해 인간들이 세계 곳곳에서 전역사에 걸쳐 반복해온 학살에 대한 책을 읽었다. 계엄군에게 붙잡혀 모나미 검정볼펜으로 고문을 당한 23살의 교대 복학생 ‘나’는 평범한 모나미 볼펜을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숨을 죽였다. ‘나’는 손가락 사이에 끼어진 볼펜을 이용한 고문을 당했다. 하얗게 뼈가 드러나고 희끗한 진물을 뱉으며 썩어 들어 갔던 자리를 쓸어본다. 그들은 존엄하다는 착각속에 살고 있었고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거였다고 자조했다. ‘나’는 대학 신입생 진수를 증언한다. 사실 그 친구가 마지막 밤에 남을 거라곤 생각 못했습니다. 총기를 모두 회수한 뒤 계엄군이 들어오기 전에 도청을 깨끗이 비워놓자고, 단 한사람도 희생되어선 안된다고 말하는 학생들 중 하나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녁에 남은 걸 보고도 의심했습니다. 저 친구는 자정이 되기 전에 빠져나갈 거라고. 김진수와 나를 포함해 열두 명이 한조가 되어 이층 소회의실에 모였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통성명을 했습니다. 각자 간단한 유서를 써서 이름과 주소를 적고는 찾기 쉽도록 셔츠 앞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당장 닥쳐올 일들이 실감나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계엄군이 시내로 진입했다는 무전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그제야 긴장이 되었습니다. 상황실장이 복도로 김진수를 불러낸 건 자정 무렵이었습니다. 여자들을 호위해 도청 밖으로 데려다 주라는 상황실장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회의실 안까지 들렸습니다. 상황실장이 김진수를 지목해 그 일을 맡긴건, 유난히 가냘프게 생긴 그 친구가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에서였을 거라고 나는 짐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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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 (14)
오늘밤 시민군이 모두 죽더라도 유족에게 확실히 연락이 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했다. 동호 혼자서 여섯 시 안에 이것들을 정리해 관마다 붙여 놓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동호야아 ”하고 부르며 엄마가 트럭들 사이로 걸어왔다. “집에 가자” 물에 빠진 사람처럼 무섭게 손을 끌어당기는 엄마를 떨쳐내려고 동호는 손목을 뒤튼다. 남은 손으로 엄마의 손가락들을 하나씩 떼어 냈다. “군대가 들어 온단다. 지금 집에 가자이.” 동호는 억센 엄마의 손가락을 다 떼어내고 날쌔게 강당 안으로 도망쳤다. 뒤따라 들어오려는 동호의 엄마는, 집으로 관을 옮겨가려는 유족들의 행렬에 가로 막힌다. “여섯시에 여기 문 닫는데요 엄마” “문 닫으면 나도 들어 갈라고요” 엄마의 얼굴이 그제야 펴진다. “꼭 그래라이, 해 지기 전에 와라이. 다 같이 저녁밥 묵게.” 동호가 목격한 정대의 죽음은, 그로하여금 마지막 순간까지 도청에 남게 했다. 그렇게 해야된다는 그날의 양심이 죽음을 회피하지 못한 것이다. “시민 여러분, 도청으로 나와주십시오. 지금 계엄군이 시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도청 끝에서 총소리가 들렸을 때, 은숙은 동호를 데리고 가려 했다. 동호는 계단으로 날쌔게 달아났다. 겁에 질린 얼굴로, 마치 달아나는 것만이 살길인 것처럼 ”같이 가자, 동호야 지금 같이 나가야 돼“ 위태하게 이층 난간을 붙들고 선 동호는 떨었다.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살고 싶어서, 동호의 눈꺼풀은 떨렸다. 작가는 동호를 ‘너’라고 2인층으로 서술한다. 동호는 친구 정대와 시위대 선두에 같이 있다가 정대가 총에 맞는 것을 목격한다. 그후 동호는 도청에 남아 시신을 거두고 기록하며 정대의 시신을 찾는다. 정대는 시위대에 있다가 총탄에 맞아 죽은뒤 유령으로 남아 버려진 시신을 목격한다. 검은 숨, 공터에 버려진 시신들 우리들의 몸은 열십자로 겹겹이 포개져 있었어. 내 배 위에 모르는 아저씨의 몸이 구십도로 가로질러 놓였고, 아저씨의 배 위에 모르는 형의 몸이 다시 구십도로 가로 질러 놓였어. 내 얼굴에 그 형의 머리카락이 닿았어. 그 형의 오금이 내 맨발에 걸쳐졌어. 그 모든 걸 내가 볼 수 있었던 건, 내 몸 곁에 바싹 붙어 어른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들이 다가왔어. 얼룩덜룩한 철모를 쓰고, 팔엔 적십자 완장을 차고서 빠르게. 그들은 2인 1조로 우리들의 몸을 들어올려 군용 트럭에 던져 넣기 시작했어. 곡물 자루들을 운반하는 것같이 기계적인 동작으로. 난 내 몸을 놓치지 않으려고 뺨에, 목덜미에 어른어른 매달려 트럭에 올라탔어. 이상하게도 나는 혼자였어. 그러니까 혼들은 만날 수 없는 거였어. 지척에 혼들이 아무리 많아도, 우린 서로를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어. 저 세상에서 만나자는 말따윈 의미없는 거였어. 내 몸은 다른 몸들과 함께 묵묵히 흔들리며 트럭에 실려갔어. 피를 너무 쏟아내 심장이 멈췄고, 심장이 멈춘 뒤로도 계속 피를 쏟아낸 내 얼굴은 습자지 같이 얇고 투명했어. 눈을 감은 내 얼굴을 본 건 처음이라 더 낯설게 보였어. 시시각각 저녁이 오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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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3)
동호는 키 순서로 배정되는 교실에서 언제나 맨 앞에 앉는 아이였다. 상황실에서 온 진수 형은 열일곱살 고1 어린 동호를 보고 여기 있는건 힘든데, 집에 들어가라고 했다. 그러나 동호는 고3이라고 둘러대며 상무대 자리를 지켰다. 동호가 장부에 기록한 인적사항들은 진수가 벽보에 써서 도청 정문에 붙였다. 그걸 직접 보거나 전해듣고 나타난 가족들에게 동호는 흰천을 열어 죽은 몸들을 보여주었다. 사자의 몸을 덮고 있는 흰천은 순수하고 깨끗하다. 흰천은 죽은 것이 아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한다. 입관을 마친뒤 약식으로 치루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불렀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 놓았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태극기로 관을 감싸고 그 앞에서 애국가를 부른다. 왜일까?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 군인들이 권력을 잡으려고 총을 쐈다. 그들은 나라가 아니기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쓰러진 사자를 추도하며 유족들은 애국가를 불렀다. 복도 여기저기서 동시에 입관이 치러졌다. 흐느낌 사이로 돌림노래처럼 애국가가 불러졌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그 다른 세상이 계속됐다면 지난주에 너는 중간고사를 봤을 거다. 시험 끝의 일요일이니 오늘은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마당에서 정대와 배드민턴을 쳤을 거다. 지난 일주일이 실감되지 않는 것만큼이나, 그 다른 세상의 시간이 더 이상 실감되지 않는다. 학교 앞 서점에서 문제집을 사려고 혼자 집을 나선 지난 일요일이었다. 갑자기 거리에 들어찬 무장 군인들이 어쩐지 무서워 너는 천변길로 내려가 걸었다. 신혼부부로 보이는, 성경과 찬송가 책을 손에 든 양복 입은 남자와 감색 원피스 차림의 여자가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몇차례 위쪽 도로에서 들리더니, 총을 메고 곤봉을 쥔 군인 셋이 언덕빼기를 타고 내려와 그 젊은 부부를 둘러쌌다. 누군가를 뒤쫓다 잘못 내려온 것 같았다. 무슨 일입니까? 지금 저흰 교회에…… 양복 입은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사람의 팔이 어떤 것인지 너는 보았다. 사람의 손, 사람의 허리, 사람의 다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았다. 살려주시오. 헐떡이며 남자가 외쳤다. 경련하던 남자의 발이 잠잠해질 때까지 그들은 멈추지 않고 곤봉을 내리쳤다. 곁에서 쉬지 않고 비명을 지르다 머리채를 잡힌 여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너는 모른다. 덜덜 턱을 떨며 천변 언덕을 기어올라 거리로, 더 낯선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거리로 들어섰기 때문이다.(24-25쪽) 동호는 일요일에 천변길에서 목격한 성경 찬송가책을 손에든 신혼부부가 군인들에게 곤봉으로 마구 난타당하는 광경이 뇌리에 박혔다. 동호네 사랑채에 세들어 살던 정대와 그의 누나 정미는 방직공장에 다니며 검정고시 보기 위해 공부를 했다. 동호 친구 정대가 광장에서 옆구 리에 총을 맞는 것을 봤다. 동호는 친구 정대와 정미 누나도 생사를 알 수 없었다. 동호는 상무관 출입구의 탁자 앞에 앉아 있다. 탁자 왼편에 장부를 펼쳐놓고, 죽은 사람의 이름과 일련번호, 전화번호나 주소를 십육절 갱지에 큼직하게 옮겨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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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2)
다 쓴 음료수 병에 꽂은 양초들이 그들의 얼굴 곁에서 조용히 타들어가고 있다. 강당의 안쪽 끝까지 너는 걸어 들어간다. 구석 자리에 뉘어 놓은 일곱사람의 기름한 형상을 본다. 이들은 정수리까지 완전히 흰 무명천으로 덮어 놓고, 젊은 여자나 아이를 찾는 사람들 에게만 잠깐씩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모습이 너무 잔인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맨 끝 모서리에 있는 사람의 상태가 가장 나쁘다. 처음 네가 보았을 때 그녀는 십대 후반이나 이십대 초반의 자그마한 여자였는데, 썩어가면서 이제는 성인 남자만큼 몸피가 커졌다. 딸이나 여동생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천을 걷어 보일 때마다 너는 부패의 속도에 놀란다. 여자의 이마부터 왼쪽 눈과 광대뼈와 턱, 맨살이 드러난 왼쪽 가슴과 옆구리에는 수차례 대검으로 그은 자상이 있다. 곤봉으로 맞은 듯한 오른쪽 두개골은 움푹 함몰돼 뇌수가 보인다. 눈에 띄는 그 상처들이 가장 먼저 썩었다. 타박상을 입은 상체의 피멍들이 뒤따라 부패했다. 발톱에 투명한 매니큐어를 바른 발가락들은 외상이 없어 깨끗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생강 덩어리들처럼 굵고 거무스레해졌다. 정강이를 넉넉히 덮었던 물방울무늬 주름치마는 이제 부풀어오른 무릎을 다 덮지 못한다. 너는 출입문으로 돌아온다. 탁자 아래 둔 박스에서 새 양초를 꺼내들고 모서리의 사람에게 돌아간다. 머리맡에서 가물가물 타고 있는 몽당초 불꽃에 새 초의 무명 심지를 기울인다. 불이 옮겨붙자 입김을 불어 몽당초를 꺼버리고, 데지 않게 조심조심 유리병에서 빼낸뒤 새 초를 꽂는다. 아직 뜨거운 몽당초를 한 손에 쥔 채 너는 허리를 수그리고 있다. 코피가 터질 것 같은 시취를 견디며 초의 불꽃을 들여다본다. 냄새를 태워준다는 반투명한 겉불꽃이 어른어른 타오른다. 주황색 속불꽃은 눈을 홀리듯 따스하게 너울거린다. 그 속에 작은 심장이나 사과 속씨 모양으로 흔들리는, 심지를 둘러싼 파르스름한 불꽃심을 노는 본다. 더는 냄새를 견딜 수 없어 너는 허리를 편다. 어둑한 실내를 둘러보자, 죽은 사람들의 머리맡에서 일렁이는 촛불 하나하나가 고요한 눈동자들처럼 너를 지켜보고 있다. 몸이 죽으면 혼은 어디로 갈까, 문득 너는 생각한다. 얼마나 오래 자기 몸 곁에 머물러 있을까. 더 갈아줘야 할 초들이 없는지 찬찬히 살피며 너는 출입구를 향해 걷는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들여다볼 때, 혼도 곁에서 함께 제 얼굴을 들여다보진 않을까. 강당을 나서기 직전에 너는 뒤돌아 본다. 혼들은 어디에도 없다. 침묵하며 누워 있는 사람들과 지독한 시취뿐이다.(10-13쪽) 동호는 키 순서로 배정되는 교실에서 언제나 맨 앞에 앉는 아이였다. 상황실에서 온 진수 형은 열일곱살 고1 어린 동호를 보고 여기 있는건 힘든데, 집에 들어가라고 했다. 그러나 동호는 고3이라고 둘러대며 상무대 자리를 지켰다. 동호가 장부에 기록한 인적사항들은 진수가 벽보에 써서 도청 정문에 붙였다. 그걸 직접 보거나 전해듣고 나타난 가족들에게 동호는 흰천을 열어 죽은 몸들을 보여주었다. 사자의 몸을 덮고 있는 흰천은 순수하고 깨끗하다. 흰천은 죽은 것이 아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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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산책]한강,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 (17)
- 치열이 고른 이를 드러내며 그가 부하를 향해 말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진에서 이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건, 이렇게 가지런히 옮겨놓은 게 아닙니다. 한줄로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시킨 대로 두 팔을 들고, 줄을 맞춰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132-133쪽) 그들이 도청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은 내면속 양심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그들의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느꼈다. 도청의 어린 학생들까지 그 양심의 보석을 죽음과 맞바꿔도 좋다고 여겼을 것이다. 동호가 온다. 넋이 온다 상무대 공터에 군법재판소가 지어졌다. 최종 조서가 넘어간 지 열흘 만에 재판이 열렸다. 하루에 두차례씩 닷새 동안 재판이 열렸다. 한 번에 약 삼십 명씩 들어가 선고를 받았다. 재판장님이 입장하십니다. 서기의 말이 떨어지자 앞문이 열리며 법무장교 셋이 차례로 들어왔다.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아있던 영재가 소리 죽여 흐느끼듯 애국가의 첫 소절을 부르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미 합창이 시작되었다. 죽은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땀과 피와 고름이었던 피고인들이 조용히 노래하는 동안 무서운 군인들이 제지하지 않았다. 그들이 노래를 끝마칠 때까지, 소절과 소절 사이마다 위태한 침묵이 풀벌레 소리와 함께, 간이재판소의 서늘한 공기 속에 도사리고 있었다. 어린 영재는 지난 십년 동안 여섯차례 손목을 그었다. 매일 밤 수면제를 술에 타서 먹고 잤다. 그 어린 영재는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마 영원히 살아서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김진수와 교대 복학생 나는 비녀 꽂기, 통닭구이, 물고문, 전기 고문을 당하고 수사관이 원하는 거짓 자백을 했다. 그들은 한줌의 식사를 나눠 먹었다. 밥알 하나, 김치 한쪽을 두고 짐승처럼 싸우지 않기 위해 인내하며 숟가락질을 했다. 계엄군은 그들을 굶기고 고문하면서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깨닫게 하려 했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란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김진수는 5.18 이후 고문의 후유증으로 10년을 버티다가 자살했다. 그는 유서와 도청 앞마당에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 직선으로 쓰러져 죽어 있는 아이들이 찍힌 사진을 남겼다. 한강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했다. 5월 광주의 열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작가는 열 살이었다. 한강은 초등학교만 다섯 곳을 다녔다고 한다. 이사를 자주해서이다.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대신해 중학교 교사 봉급으로 손아래 형제들을 맡아 키웠던 아버지가 막내고모까지 대학을 졸업시키면서 글쓰기에만 전념하였다. 한강은 가난했지만 한승원의 서가에 있는 갖가지 책들을 읽으며 공상을 했다. 불꺼진 방안에서 홀로 머리를 굴렸다. 한승원이 광주의 누군가를 조문하러 갔다가 그 도시의 터미널에서 구했다는 사진첩을 몰래 펼쳤다.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했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어린 한강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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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산책]한강,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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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6)
- 김진수가 자신의 총을 챙겨 굳은 얼굴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 너는 돌아오지 말아라. 그러나 짐작과 달리 그는 삼십분이 채 지나지 않아 돌아왔습니다. 나갈 때와는 달리 긴장이 완전히 풀린 얼굴이었습니다. 밀려오는 졸음을 견딜수 없는 듯 가늘게 뜬 눈으로 총을 벽에 세워 놓더니, 창 아래 놓인 인조가죽 소파에 모로 누워 잠들어 버렸습니다. 내가 흔들어 깨우자 신음하듯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조금만 잘께요. 이상한 일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도 별안간 기운이 빠진 듯 벽에 기대앉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둘 꾸벅꾸벅 졸기 시작 했습니다. 나도 막막한 마음이 되어 김진수가 누운 소파 옆에 웅크려 앉았습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졸음이 오기는커녕 신경이 가장 날카롭게 곤두서야 할 시간, 냉정한 정신력에 의지해야 할 그 시간에, 우리들은 눈도 귀도 없는 뭉클뭉클한 잠 속으로 정신없이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110-111쪽) 대학생 김진수는 도청이 진압되고 체포되어 7년형을 받고 이듬해 성탄절까지 특사로 석방되었다. 김진수는 여성적인 외모로 변칙적인 고문을 더 당했다. 성기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게 하고 나무 자로 내려 치겠다며 위협당했다. 하체를 발가벗기고 영창앞 잔디밭으로 데려가, 팔을 뒤로 묶고 엎드려 있게 했다. 굵은 개미들이 세시간 동안 김진수의 사타구니를 물었다. 그는 석방된뒤 매일 밤 벌레와 관련된 악몽을 꾸었다. 김진수와 한조가 되어 도청을 지키다가 체포되어 9년형을 받았던 스물세살의 교대 복학생의 증언이다. “적당한 때 너는 항복해라. 알겠지. 항복하라고. 손들고 나가. 손들고 나가는 애를 죽이진 않을 거야” 김진수는 도청을 빠져 나가지 않은 중학생 아이에게 마지막 순간에 항복해서 목숨을 건지라고 설득했다. 가장 길었던 5월의 깊고 검은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외신기자가 찍은 사진중에 직선으로 쓰러져 죽은 아이들이 보였다. 군인들의 명령대로 이층 복도에 머리를 박고 있던 우리들이 도청 마당으로 끌려내려간 건 동틀 무렵이었습니다. 뒤로 손이 묶인채 마당 가장자리에 일렬로 무릎 꿇고 앉은 우리들에게 한 장교가 다가왔습니다. 그는 흥분해 있었습니다. 한사람씩 군화로 등을 밟아 흙바닥에 머리를 박게 하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씨팔, 내가 월남 갔다 온 사람이야. 내 손으로 죽인 베트콩 새끼들이 서른명도 넘는다, 더러운 빨갱이 새끼들. 그때 김진수는 내 옆에 있었습니다. 장교가 김진수의 등을 밟자, 하필 자갈에 찧은 이마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다섯명의 어린 학생들이 이층에서 두 손을 들고 내려온 것은 그때였습니다. 계엄군이 대낮같이 조명탄을 밝히며 기관총을 난사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소회의실 캐비닛에 숨으라고 명령했던 네명의 고등학생과 소파에서 김진수와 짧은 실랑이를 벌였던 중학생 이었습니다. 더 이상 총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들은 김진수의 말대로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러 내려온 것이었습니다. 저 새끼들 봐라, 김진수의 등을 밟고 있던 장교가 여전히 흥분한 채 소리쳤습니다. 씨팔 빨갱이들, 항복이다 이거냐? 목숨은 아깝다 이거냐? 한발을 여전히 김진수의 등에 올린 채 그는 M16을 들어 조준했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학생들에게 총을 갈겼습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봤습니다. 씨팔, 존나 영화 같지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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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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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5)
- 시가지를 벗어난 트럭은 어둑한 벌판 가운데로 난 텅빈 길을 달렸어. 참나무들이 우거진 낮은 언덕길을 오르자 철문이 나타났어. 트럭이 잠시 멈추자 보초병 둘이 경례를 붙였어. 보초병들이 철문을 열 때 한번, 닫을 때 다시 한번 길고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렸어. 트럭은 거기서부터 좀더 언덕길을 올라가, 단층 콘크리트 건물과 참나무 숲 사이 공터에서 멈췄어. 그들이 운전석에서 걸어 나왔어. 트럭 후미의 잠금쇠를 푼 뒤, 다시 2인1조로 우리들의 팔다리를 잡고 나르기 시작했어. 턱으로, 뺨으로 미끄러지며 매달려 내 몸을 따라가면서 나는 불 켜진 단층 건물을 올려다 봤어. 무슨 건물인지 알고 싶었어. 여기가 어디인지, 지금 내 몸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공터 뒤의 덤불숲 사이로 그들은 들어갔어. 상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지시하는 대로 다시 열십자로 차곡차곡 몸들을 쌓아올렸어. 내 몸은 아래에서 두 번째에 끼여 납작하게 짓눌렸어. 고개가 뒤로 꺾인 채 눈을 감고 반쯤 입을 벌린 내 얼굴은 숲 그늘에 가려 더 창백해 보였어. 맨위에 놓인 남자의 몸에다 그들이 가마니를 덮자, 이제 몸들의 탑은 수십개의 다리를 지닌 거대한 짐승의 사체 같은 것이 되었어. (46-48쪽) 정대는 이미 죽어 혼만 있는 상태에서 5.18 희생자들의 죽음을 증언한다. <소년이 온다>의 등장인물은 고립된 상황에서도 타인의 삶과 죽음을 관찰하고 증언한다.동호는 정대의 삶을, 정대는 공터에 버려진 시신들을 증언한다. 한강 작가는 5월 광주를 증언하는 900여 명의 증언록을 구해, 약 한 달에 걸쳐 매일 아홉 시간씩 읽어 완독했다. 광주 뿐만이 아니라 국가 폭력의 다른 사례와 자료를 구해 인간들이 세계 곳곳에서 전역사에 걸쳐 반복해온 학살에 대한 책을 읽었다. 계엄군에게 붙잡혀 모나미 검정볼펜으로 고문을 당한 23살의 교대 복학생 ‘나’는 평범한 모나미 볼펜을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숨을 죽였다. ‘나’는 손가락 사이에 끼어진 볼펜을 이용한 고문을 당했다. 하얗게 뼈가 드러나고 희끗한 진물을 뱉으며 썩어 들어 갔던 자리를 쓸어본다. 그들은 존엄하다는 착각속에 살고 있었고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거였다고 자조했다. ‘나’는 대학 신입생 진수를 증언한다. 사실 그 친구가 마지막 밤에 남을 거라곤 생각 못했습니다. 총기를 모두 회수한 뒤 계엄군이 들어오기 전에 도청을 깨끗이 비워놓자고, 단 한사람도 희생되어선 안된다고 말하는 학생들 중 하나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녁에 남은 걸 보고도 의심했습니다. 저 친구는 자정이 되기 전에 빠져나갈 거라고. 김진수와 나를 포함해 열두 명이 한조가 되어 이층 소회의실에 모였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통성명을 했습니다. 각자 간단한 유서를 써서 이름과 주소를 적고는 찾기 쉽도록 셔츠 앞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당장 닥쳐올 일들이 실감나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계엄군이 시내로 진입했다는 무전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그제야 긴장이 되었습니다. 상황실장이 복도로 김진수를 불러낸 건 자정 무렵이었습니다. 여자들을 호위해 도청 밖으로 데려다 주라는 상황실장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회의실 안까지 들렸습니다. 상황실장이 김진수를 지목해 그 일을 맡긴건, 유난히 가냘프게 생긴 그 친구가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에서였을 거라고 나는 짐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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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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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 (14)
- 오늘밤 시민군이 모두 죽더라도 유족에게 확실히 연락이 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했다. 동호 혼자서 여섯 시 안에 이것들을 정리해 관마다 붙여 놓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동호야아 ”하고 부르며 엄마가 트럭들 사이로 걸어왔다. “집에 가자” 물에 빠진 사람처럼 무섭게 손을 끌어당기는 엄마를 떨쳐내려고 동호는 손목을 뒤튼다. 남은 손으로 엄마의 손가락들을 하나씩 떼어 냈다. “군대가 들어 온단다. 지금 집에 가자이.” 동호는 억센 엄마의 손가락을 다 떼어내고 날쌔게 강당 안으로 도망쳤다. 뒤따라 들어오려는 동호의 엄마는, 집으로 관을 옮겨가려는 유족들의 행렬에 가로 막힌다. “여섯시에 여기 문 닫는데요 엄마” “문 닫으면 나도 들어 갈라고요” 엄마의 얼굴이 그제야 펴진다. “꼭 그래라이, 해 지기 전에 와라이. 다 같이 저녁밥 묵게.” 동호가 목격한 정대의 죽음은, 그로하여금 마지막 순간까지 도청에 남게 했다. 그렇게 해야된다는 그날의 양심이 죽음을 회피하지 못한 것이다. “시민 여러분, 도청으로 나와주십시오. 지금 계엄군이 시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도청 끝에서 총소리가 들렸을 때, 은숙은 동호를 데리고 가려 했다. 동호는 계단으로 날쌔게 달아났다. 겁에 질린 얼굴로, 마치 달아나는 것만이 살길인 것처럼 ”같이 가자, 동호야 지금 같이 나가야 돼“ 위태하게 이층 난간을 붙들고 선 동호는 떨었다.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살고 싶어서, 동호의 눈꺼풀은 떨렸다. 작가는 동호를 ‘너’라고 2인층으로 서술한다. 동호는 친구 정대와 시위대 선두에 같이 있다가 정대가 총에 맞는 것을 목격한다. 그후 동호는 도청에 남아 시신을 거두고 기록하며 정대의 시신을 찾는다. 정대는 시위대에 있다가 총탄에 맞아 죽은뒤 유령으로 남아 버려진 시신을 목격한다. 검은 숨, 공터에 버려진 시신들 우리들의 몸은 열십자로 겹겹이 포개져 있었어. 내 배 위에 모르는 아저씨의 몸이 구십도로 가로질러 놓였고, 아저씨의 배 위에 모르는 형의 몸이 다시 구십도로 가로 질러 놓였어. 내 얼굴에 그 형의 머리카락이 닿았어. 그 형의 오금이 내 맨발에 걸쳐졌어. 그 모든 걸 내가 볼 수 있었던 건, 내 몸 곁에 바싹 붙어 어른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들이 다가왔어. 얼룩덜룩한 철모를 쓰고, 팔엔 적십자 완장을 차고서 빠르게. 그들은 2인 1조로 우리들의 몸을 들어올려 군용 트럭에 던져 넣기 시작했어. 곡물 자루들을 운반하는 것같이 기계적인 동작으로. 난 내 몸을 놓치지 않으려고 뺨에, 목덜미에 어른어른 매달려 트럭에 올라탔어. 이상하게도 나는 혼자였어. 그러니까 혼들은 만날 수 없는 거였어. 지척에 혼들이 아무리 많아도, 우린 서로를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어. 저 세상에서 만나자는 말따윈 의미없는 거였어. 내 몸은 다른 몸들과 함께 묵묵히 흔들리며 트럭에 실려갔어. 피를 너무 쏟아내 심장이 멈췄고, 심장이 멈춘 뒤로도 계속 피를 쏟아낸 내 얼굴은 습자지 같이 얇고 투명했어. 눈을 감은 내 얼굴을 본 건 처음이라 더 낯설게 보였어. 시시각각 저녁이 오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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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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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3)
- 동호는 키 순서로 배정되는 교실에서 언제나 맨 앞에 앉는 아이였다. 상황실에서 온 진수 형은 열일곱살 고1 어린 동호를 보고 여기 있는건 힘든데, 집에 들어가라고 했다. 그러나 동호는 고3이라고 둘러대며 상무대 자리를 지켰다. 동호가 장부에 기록한 인적사항들은 진수가 벽보에 써서 도청 정문에 붙였다. 그걸 직접 보거나 전해듣고 나타난 가족들에게 동호는 흰천을 열어 죽은 몸들을 보여주었다. 사자의 몸을 덮고 있는 흰천은 순수하고 깨끗하다. 흰천은 죽은 것이 아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한다. 입관을 마친뒤 약식으로 치루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불렀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 놓았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태극기로 관을 감싸고 그 앞에서 애국가를 부른다. 왜일까?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 군인들이 권력을 잡으려고 총을 쐈다. 그들은 나라가 아니기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쓰러진 사자를 추도하며 유족들은 애국가를 불렀다. 복도 여기저기서 동시에 입관이 치러졌다. 흐느낌 사이로 돌림노래처럼 애국가가 불러졌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그 다른 세상이 계속됐다면 지난주에 너는 중간고사를 봤을 거다. 시험 끝의 일요일이니 오늘은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마당에서 정대와 배드민턴을 쳤을 거다. 지난 일주일이 실감되지 않는 것만큼이나, 그 다른 세상의 시간이 더 이상 실감되지 않는다. 학교 앞 서점에서 문제집을 사려고 혼자 집을 나선 지난 일요일이었다. 갑자기 거리에 들어찬 무장 군인들이 어쩐지 무서워 너는 천변길로 내려가 걸었다. 신혼부부로 보이는, 성경과 찬송가 책을 손에 든 양복 입은 남자와 감색 원피스 차림의 여자가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몇차례 위쪽 도로에서 들리더니, 총을 메고 곤봉을 쥔 군인 셋이 언덕빼기를 타고 내려와 그 젊은 부부를 둘러쌌다. 누군가를 뒤쫓다 잘못 내려온 것 같았다. 무슨 일입니까? 지금 저흰 교회에…… 양복 입은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사람의 팔이 어떤 것인지 너는 보았다. 사람의 손, 사람의 허리, 사람의 다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았다. 살려주시오. 헐떡이며 남자가 외쳤다. 경련하던 남자의 발이 잠잠해질 때까지 그들은 멈추지 않고 곤봉을 내리쳤다. 곁에서 쉬지 않고 비명을 지르다 머리채를 잡힌 여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너는 모른다. 덜덜 턱을 떨며 천변 언덕을 기어올라 거리로, 더 낯선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거리로 들어섰기 때문이다.(24-25쪽) 동호는 일요일에 천변길에서 목격한 성경 찬송가책을 손에든 신혼부부가 군인들에게 곤봉으로 마구 난타당하는 광경이 뇌리에 박혔다. 동호네 사랑채에 세들어 살던 정대와 그의 누나 정미는 방직공장에 다니며 검정고시 보기 위해 공부를 했다. 동호 친구 정대가 광장에서 옆구 리에 총을 맞는 것을 봤다. 동호는 친구 정대와 정미 누나도 생사를 알 수 없었다. 동호는 상무관 출입구의 탁자 앞에 앉아 있다. 탁자 왼편에 장부를 펼쳐놓고, 죽은 사람의 이름과 일련번호, 전화번호나 주소를 십육절 갱지에 큼직하게 옮겨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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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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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2)
- 다 쓴 음료수 병에 꽂은 양초들이 그들의 얼굴 곁에서 조용히 타들어가고 있다. 강당의 안쪽 끝까지 너는 걸어 들어간다. 구석 자리에 뉘어 놓은 일곱사람의 기름한 형상을 본다. 이들은 정수리까지 완전히 흰 무명천으로 덮어 놓고, 젊은 여자나 아이를 찾는 사람들 에게만 잠깐씩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모습이 너무 잔인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맨 끝 모서리에 있는 사람의 상태가 가장 나쁘다. 처음 네가 보았을 때 그녀는 십대 후반이나 이십대 초반의 자그마한 여자였는데, 썩어가면서 이제는 성인 남자만큼 몸피가 커졌다. 딸이나 여동생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천을 걷어 보일 때마다 너는 부패의 속도에 놀란다. 여자의 이마부터 왼쪽 눈과 광대뼈와 턱, 맨살이 드러난 왼쪽 가슴과 옆구리에는 수차례 대검으로 그은 자상이 있다. 곤봉으로 맞은 듯한 오른쪽 두개골은 움푹 함몰돼 뇌수가 보인다. 눈에 띄는 그 상처들이 가장 먼저 썩었다. 타박상을 입은 상체의 피멍들이 뒤따라 부패했다. 발톱에 투명한 매니큐어를 바른 발가락들은 외상이 없어 깨끗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생강 덩어리들처럼 굵고 거무스레해졌다. 정강이를 넉넉히 덮었던 물방울무늬 주름치마는 이제 부풀어오른 무릎을 다 덮지 못한다. 너는 출입문으로 돌아온다. 탁자 아래 둔 박스에서 새 양초를 꺼내들고 모서리의 사람에게 돌아간다. 머리맡에서 가물가물 타고 있는 몽당초 불꽃에 새 초의 무명 심지를 기울인다. 불이 옮겨붙자 입김을 불어 몽당초를 꺼버리고, 데지 않게 조심조심 유리병에서 빼낸뒤 새 초를 꽂는다. 아직 뜨거운 몽당초를 한 손에 쥔 채 너는 허리를 수그리고 있다. 코피가 터질 것 같은 시취를 견디며 초의 불꽃을 들여다본다. 냄새를 태워준다는 반투명한 겉불꽃이 어른어른 타오른다. 주황색 속불꽃은 눈을 홀리듯 따스하게 너울거린다. 그 속에 작은 심장이나 사과 속씨 모양으로 흔들리는, 심지를 둘러싼 파르스름한 불꽃심을 노는 본다. 더는 냄새를 견딜 수 없어 너는 허리를 편다. 어둑한 실내를 둘러보자, 죽은 사람들의 머리맡에서 일렁이는 촛불 하나하나가 고요한 눈동자들처럼 너를 지켜보고 있다. 몸이 죽으면 혼은 어디로 갈까, 문득 너는 생각한다. 얼마나 오래 자기 몸 곁에 머물러 있을까. 더 갈아줘야 할 초들이 없는지 찬찬히 살피며 너는 출입구를 향해 걷는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들여다볼 때, 혼도 곁에서 함께 제 얼굴을 들여다보진 않을까. 강당을 나서기 직전에 너는 뒤돌아 본다. 혼들은 어디에도 없다. 침묵하며 누워 있는 사람들과 지독한 시취뿐이다.(10-13쪽) 동호는 키 순서로 배정되는 교실에서 언제나 맨 앞에 앉는 아이였다. 상황실에서 온 진수 형은 열일곱살 고1 어린 동호를 보고 여기 있는건 힘든데, 집에 들어가라고 했다. 그러나 동호는 고3이라고 둘러대며 상무대 자리를 지켰다. 동호가 장부에 기록한 인적사항들은 진수가 벽보에 써서 도청 정문에 붙였다. 그걸 직접 보거나 전해듣고 나타난 가족들에게 동호는 흰천을 열어 죽은 몸들을 보여주었다. 사자의 몸을 덮고 있는 흰천은 순수하고 깨끗하다. 흰천은 죽은 것이 아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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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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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화 지향과 기독교 신비주의(2)-박계주의
- 박계주가 이용도로부터 사상적 영향을 받게 된 역정(歷程)을 알아보기 위해 먼저 박계주가 ‘예수교회’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게 된 전후 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박계주(朴啓周, 1913-66)는 만주의 간도 용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그곳의 영신중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해(1931)에 이용도 목사가 간도의 용정에 부흥회를 인도하기 위해 들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서운(曙雲) 박계주는 중학교 4학년 시절부터 기독교회와 관련을 맺기 시작했다고 전해지는데, 증거는 미약하지만, 박계주가 1931년 감리교회와 관련을 맺게 되었던 것은 감리교의 부흥목사 이용도의 영향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해 준다. 특히 그의 그 후의 행적에서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지 않을 수 없다고 하겠다. 그는 1932년 중학을 졸업하고서 곧 어느 감리교 계통의 소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다가, 1933년 미국 유학의 길을 찾기 위해 감리교 신학교를 지망해 스칼라십을 얻어냈지만, 안타깝게도 연령 미달로 대기 상태에 있다가 새로이 뜻한 바가 있어 사설수도원인 신학산(神學山)에 들어가게 되었다. 거기서 그는 백남주(白南柱) 목사등의 권유를 받아 평양의 중앙선도원으로 가게 되는데, 그해(1933) 6월 그곳에서는 백남주와 이용도 등이 중심이 되어 ‘예수교회’란 새 교파가 창설되었고, 그때 초대 선도감으로 이용도가 선출되었던 것이다.(그러나 이용도는 이 일이 있은 몇 달 뒤, 불행하게도 서거하였다.) 백남주 목사의 권유로 박계주는 그해(1933)에 중앙선도원의 기관지인 월간 <예수>를 창간하고 그 편집 책임자가 되었다. 중도에 <예수>지 편집 일을 그만둔 적도 있었지만, 1937년 또다시 <예수>지 편집 일을 맡음으로써 그는 <예수>지 편집에 전후 4년여의 시간을 보냈다. 초대 선도감 이용도의 정신이 크게 지배하고 있던 ‘예수교회’의 중앙선도원에서 기관지 <예수>를 발간하는 편집 책임자로서 4년여 재직하던 그 시기에 그는 <순애보(殉愛譜)>란 소설 작품을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그 작업을 완성해 1938년 매일신보에 응모하여 당선의 영광을 안을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박계주가 1933년 <예수>지 편집 책임을 맡기 그 이전, 그는 한 신문의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赤貧>(1930)이 가작으로 뽑힌바 있으며, 그 다음해 다른 작품 <혁명전선에 나서는 소년형제>를 <민성보> 한글판에 발표하기도 하는 등 문학에 대한 열정이 강했다고 보겠다. ‘예수교회’ 창설자 이용도는 1933년 10월 서거했으나 그 자신이 뿌린 씨앗, 곧 그의 기독교 정신은 박계주의 <순애보>를 통해 5년 뒤 그 문학적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여기서 이런 단정을 내리는 것은, 박계주가 ‘예수교회’의 회원으로 그 기관지 <예수>를 편집하는 책임을 맡았었다고 하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그의 소설 <순애보>가 그 교파의 초대 선도감이었던 이용도 목사의 사상을 영향 받게 되었을 것이라는 개연성에만 기대어 하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개연성으로 충분하다. 박계주의 <순애보>가 이용도의 기독교 사상을 다분히 영향 받았다고 할 때에는 그 작품의 내용과 이용도의 기독교 사상 사이에 분명한 일치점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그 이외의 몇 가지 점 등이 합해져, 이 작품이 틀림없이 이용도의 영향 하에서 집필된 것이란 점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하에서 이와 같은 면을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가보기로 한다. 이는 곧 이용도의 ‘고난과 사랑의 신비주의’가 어떻게 <순애보>에 반영되어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일이 될 것이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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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화 지향과 기독교 신비주의(2)-박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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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목회 「마음이 상하다」를 특집, “정신질환, 신체적 건강 손상된 상태”
- 월간목회 성경, 절대적 진리로 행동과 심리에 위대한 교과서 「창조문예」는 300호 특집·문인들 신년설계도, 「신앙계」는 정인찬총장의 인생스토리 게재 SNS 시대에 맞는 종교의 새로운 실천을 고민해야 기독교사상 1월호 기독교잡지들이 발행됐다. 〈월간목회〉는 「광야의 시간(1)-마음이 상하다」를 특집으로, 〈기독교사상〉은 「SNS 시대와 기독교」란 특집을 기획했다. 〈신앙계〉는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 대학교 정인찬총장의 인생 스토리가 실렸다. 〈창조문예〉는 300호 특집으로 임만호회장의 기념사를 비롯하여 축시, 축사, 문인들의 신년 설계가 실렸다. 〈월간목회〉는 「광야의 시간(1)-마음이 상하다」란 특집에서 한혜성원장은 정신과 질환을 건강의 문제로 이해하는 관점이 한국 기독교 안에 확장되어야 한다. 정신과 질환을 의지와 영성의 문제가 아닌 신경계의 불균형이 물리적으로 일어나 신체적인 건강이 손상된 상태로 접근해야 한다. 정신과 치료의 본질은 고통당하는 이들의 곁에 그저 함께 있는 것으로서 교회에도 판단과 정죄, 권면 대신에 그들과 함께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또한 김선화박사는 기독교 상담의 목적은 내담자가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 관계를 맺고 하나님과 관계가 성숙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성경은 절대적 진리로서 인간행동과 심리에 가장 분명하고 위대한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실제적 치유의 과정에서 성령의 초자연적인 치유의 능력을 의지하고 그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기독교사상〉은 「SNS 시대와 기독교」란 특집에서 이성민교수(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SNS 시대에 맞는 종교의 새로운 실천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SNS 소통의 특징으로 ‘비동기성’을 꼽았다. SNS를 이용하면 실시간 소통이 아니라 원할 때 소통할 수 있으며, 다수의 사람과 동시에 소통이 가능해진다. 또한 SNS는 권위가 아닌 ‘주목’을 가장 큰 가치로 만들고 상향식 소통을 보편화했다. 또한 조성돈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는 먼저 매체가 변화하면 콘텐츠도 변해야 함을 강조하며, 유튜브 설교와 화상 회의 프로그램을 통한 소그룹 모임을 예시로 들어 그 내용과 구성이 변화해야 함을 지적했다. 두 번째로 필자는 SNS가 개인주의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혼자이고 싶지만 외로운 건 싫다’고 말하는 SNS의 관계 맺기를 살폈다. 세 번째로 필자는 SNS로 인해 조직 중심, 건물 중심의 교회와 목회가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손승호박사(명지대학교 강사)는 그중에서도 유튜브를 통해 에큐메니컬 진영을 비판하는 세력을 소개 및 분석하고 그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NCCK는 지난 10월 NCCK에 대해 비합리적인 비난을 가하는 채널들에 대해 대응할 것을 결정했다. 〈신앙계〉는 특집으로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정인찬 총장의 은혜로운 인생 스토리가 실렸다. 베스트셀러 ‘풀꽃’의 나태주 시인,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노숙인자활쉼터 ‘소중한 사람들’을 운영하고 있는 유정옥 사모, 통일을 준비하는 탈북민 이야기 등이 연재 중이다. 또한 소설가 김성일 장로의 간증, ‘연탄길’의 이철환 작가 등의 글도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대천덕 신부의 원고 중 엄선해 ‘다시 읽는 산골짜기에서 온 편지’ 연재를 새로 시작했다. 〈창조문예〉는 300호 특집으로 임만호회장의 기념사를 비롯하여 축시, 축사, 문인들의 신년설계가 실렸다. 「작가연구」스물여덟 번째로 김지원시인의 「가을음계」외 9편과 연보 「나의 문학 나의 신앙」 작품론 등을 수록했다. 「신작 다섯 편」으로 허형만, 박재화시인의 시가 수록됐고, 또한 이성교시인의 추모 특집으로 연보, 시 「강릉에 오면」 외, 추모사, 조시, 시평이 실렸다. 그리고 「망우리공원 문인열전(6)」으로 정종배시인의 「일제와 독재에 까칠했던 민족시인 김동명」, 「‘자연’과 ‘인간’, 그리고 ‘회복’의 삶(22)」으로 박정미수필가의 「바다의 정원」이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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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목회 「마음이 상하다」를 특집, “정신질환, 신체적 건강 손상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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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에세이] 새해 하나님과 동행하기
-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 앞에 큰 은혜의 바다물결이 넘쳐오고 새해에 우리가 알아야 할 새로운 사실은 무엇인가? 사람은 마땅히 사랑을 받는 대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진리를 다시 마주하는 것이다. 그것을 아는 것이 새로운 시작을 위한 완성의 밑그림이 되어 줄 깨달음이다.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삶의 응답은 매우 풍성하고 안정적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으로 사람을 향한 역사 또한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고 친히 선포하심으로 알 수 있다(창1:28). 사람이 신의 소생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면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 삶의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된다. 때로는 혹독한 시련과 고통이 수반되지만, 역사의 체험은 인류애를 실현하려는 하나님의 당위성과 인간의 선한 의지를 불려온다. 정의와 공의는 강해지고 확장되어 꽃피게 될 것이다. 이사야 11장 9절에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라는 환희에 찬 미래를 위해 우리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떠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쫓아 사랑 안에 거하며 그 사랑에 응답하는 사람으로 견인되어 지고 있다. 하나님을 아는 마음이 온 세상에 가득함으로 모든 전쟁과 다툼과 시기와 분쟁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마침내 세상은 자기애가 아닌 이타적인 사랑의 지식으로 충만케 될 것이다. 이러한 세상은 오직 하나님과 사람의 협력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이사야 5장 24절에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라는 요구는 우리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이다. 이러한 사명을 깨닫는 일은 어디에서나 싹이 틀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의 위치에 선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을 때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11장 8절에서 말하고 있는 사실이 무엇인가를 인지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믿음의 인지란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매일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믿음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의 모든 악함과 약점을 고치시려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임하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너무나도 보편적인 사실이 되어 버린 복음이지만,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감화와 감동으로 느껴져야 한다. 이러한 사랑을 느끼고 살아갈 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어 모든 것을 보는 대로 판단하지 않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사랑으로 응답하는 삶이 된다.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만남은 기사와 이적을 체험하며 은혜로운 삶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만나는 힘 있는 믿음의 소망으로 나아가자. 내가 형통할 때 삶이 가볍고 즐거운 전진을 할 수 있다면 감정에 속한 믿음일 뿐이다. 오직 주님의 사랑을 알고 느끼는 사람은 그 사랑에 감화되어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여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을 수 있게 된다. 이런 고난과 아픔 속에서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려는 참된 자아가 행한 것이 된다. 안전하고 편안한 삶에 대한 불안한 감정보다 참된 의지로 하나님을 찾을 때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 앞에 큰 은혜의 바다 물결이 넘쳐오는 새해의 아침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기 위한 새로운 과정 앞에 담대히 사랑에 신뢰를 보내자. 희망의 의지와 벅찬 기쁨의 마음 문을 열고 힘차게 출발선을 향해 나아가자 /대전반석교회 목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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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에세이] 새해 하나님과 동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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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시 - 새해 새 아침의 선물] 박이도 시인의 내 각성의 눈을 뜨게 하소서
- 새해 새 아침이 밝았다 내가 매일 꿈꾸던 내일에의 희망 그 희망의 날이 오늘 또 내 앞에 찾아왔다 오늘은 한 해의 첫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날 생명의 선물입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이 벅찬 아침 내 각성의 눈도 뜨게 하소서 매일매일 새 생명을 주시고 새 날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에 경배하세 신령한 노래로 경배하세 새봄에 씨앗 뿌리고 노고지리 지저귀는 동산에 올라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자연의 세상 봄의 전령사 제비도 날아오르는구나 하늘을 가르며 곡예를 펼치는 날렵한 몸매 사랑과 소망의 포물선을 그리니 여기가 지상낙원일세 무지개 뜨는 언덕에 보라 새날이 밝았도다 동해의 수평선을 가르며 새날을 밝히시는 우리 주님에게 기쁨의 찬송 부르세 찬란하게 솟아오르는 해님을 마주하며 감사의 기도 드리세. *시편 119편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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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시 - 새해 새 아침의 선물] 박이도 시인의 내 각성의 눈을 뜨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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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바탕의 농촌계몽 소설(5)-심훈의 「상록수」
- 이제 마지막으로, 좀 다른 방향에서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심훈의 <상록수>(1935)가 어쩌면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여자의 일생>(1982)이란 유명한 소설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닐까 하는 판단이 들어 그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였다. 이 이야기를 하자고 하니 그 <여자의 일생>에 대하여 독자 측에서 최소한의 이해는 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아주(!) 간략히 그 작품의 이야기 골자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가난한 여주인공 기꾸는 가톨릭 신자인 남주인공 세이기찌를 몹시 사랑했는데, 당시 일본에서는 가톨릭에 대한 박해가 심해서 결국 그가 투옥되고 말았다. 기꾸는 옥중의 세이기찌를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영치금을 마련해야 했고, 마지막 수단으로 환락가에서 몸을 팔아 영치금을 마련해 그의 옥바라지를 했다. 세월이 흘러 세이기찌가 징역살이를 끝내고 출소했으나, 중병에 걸린 기꾸는 이미 운명을 하고 만 뒤였다. 이런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는 슈사쿠의 <여자의 일생>이 그보다 훨씬 앞서 나온 심훈의 <상록수>와 구조적 일치성을 보여주고 있음은 우리의 관심을 유발한다. 만일 슈사쿠의 <여자의 일생>이 심훈의 <상록수>로부터 소설 구조상의 어떤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면(하나의 가정이지만), 우리가 그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두 작품 상호 간에 어떤 영향을 서로 주고받은 문제는 명확히 실증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영향사적 관점에서 분명한 ‘영향의 주고받음’이 증명될 수 있는 형편은 지금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두 작품 상호 간의 결과적 일치점 내지는 유사점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선에서, 단지 시기적으로 앞서 나온 우리 소설(‘상록수’)로부터 뒤에 나오게 된 일본 작품(‘여자의 일생’)이 막연하게나마 어떤 영향을 받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론적 관점에서의 개연성만을 시사(示唆)하고자 한다. <상록수>의 구조가 그러하듯 <여자의 일생>의 구조 역시 남녀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각기 번갈아서 지그재그식으로 엮어나가는 이른바 격자소설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 두 주인공이란 (동혁과 영신에 대응하는) 세이기찌와 기꾸이다. 어찌 생각해보면 이런 식의 구조는 흔한 것이 아니냐 하는 물음이 뒤따를 법도 하다. 그러나 의외로 이런 식의 구조가 흔한 게 아니라 오히려 희귀한 편이란 데 우리의 관심이 기울어지는 것이다. 박동혁과 채영신, 이 두 청년들은 그들 각자가 추진하는 농촌계몽 사업, 또는 농촌봉사 활동에 있어서 거의 막상막하의 열정을 보이면서도 그 사업을 중심축으로 하여 두 사람 다 사랑과 이념에 깊이 빠져 있는 편인데, 특히 채영신은 사랑에, 박동혁은 보다 더 이념에 몰두해 있는 양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인물 설정 면의 특징이 일본 작가 슈사쿠의 <여자의 일생>에 고스란히 옮겨져 있는 형국이라고 하겠다. 채영신·기꾸 등의 소박한 사랑의 소유자(여성)들이 박동혁·세이기찌 등의 강력한 이념의 소유자(남성)들을 만나 그 소박한 사랑이나마 꽃피워 보지 못한 채 희생·봉사의 삶을 마감하는 비극적 결말의 이야기…. 두 작품들은 서로 흡사한 구조적 일치점 내지는 유사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이런 개연성에 대해서만 소루하게 언급했지만, 이후 작가들의 생애 연구, 또는 전기적인 자료 연구, 나아가서는 한일문학의 교류사 연구 등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어떤 해답을 이끌어내는 후속적인 논의가, 그 누구에 의해서든 나올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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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바탕의 농촌계몽 소설(5)-심훈의 「상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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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시]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 우리는 지금 베들레헴으로 가고 있습니다. 백향목 숲 향기가 도열해 있는 길에 샛별은 청보석처럼 손짓합니다. 우리는 지금 주님 태어나신 베들레헴 마굿간으로 가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성결한 분이 처음 누우셨던 말구유, 주님이 받으실 고난과 베푸실 은혜와 기적을 생각하며, 두 다리에 힘을 모으고 떨리는 가슴을 누르며 걷습니다. 해는 이미 졌지만 어둡지 않고 처음 딛는 땅도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는 베들레헴으로 가고 있으니까요. 손에 손에 아기 예수께 드릴 선물을 들었습니다. 어떤 손에는 찬양을 어떤 손에는 감사를 어떤 손에는 사랑을 어떤 손에는 영광을 어떤 손에는 소망을 어떤 손에는 감격을 어떤 손에는 아, 어떤 손에는 뜨거운 눈물을. 황금의 쟁반에 받쳐 들고서 믿으며 노래하며, 노래하며 믿으며 걸어갑니다. 바람은 은빛 종을 흔들면서 어서 오라, 오라고 부릅니다. 동서와 남북, 사방천지에서 구름 같은 사람들이 베들레헴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러 가는 사람들, 기뻐하러 가는 사람들. 등성이를 넘어서 산굽이를 돌 때마다 주님의 생명은 샘처럼 솟아나고 주님의 진리는 대양처럼 파도쳐 우리의 발걸음이 환희로 넘칩니다. 가다가 벼랑을 만나면 날아서 갈 것입니다. 가다가 가시덤불에 갇히면 주님의 지팡이로 헤치고 나갈 것입니다. 어떤 짐승도 우리를 막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의 탄생을 찬양하러 갑니다. 길은 길을 불러 이어지고 마음은 타올라 발부리를 지킵니다. 아무것도 부럽지 않습니다. 우렁찬 행군,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세계의 만민이 한마음으로 가는 길, 아기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을 감사하러 가는 길, 경배하러 가는 길. 우리는 주님의 병사, 아기 예수 만나러 베들레헴으로 갑니다. 이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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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시]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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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바탕의 농촌계몽 소설(4)-심훈의 「상록수」
- 이제부터는 <상록수>(1935)의 기독교문학적 특성을 몇 가지 관점에서 밝혀보고자 한다. <상록수>가 나오기 전까지는 기독교 세계를 반영한 소설 작품은 모두 ‘도시소설’ 부류였다. 이광수의 <무정>(1917)이나 <재생>(1924)을 비롯하여 염상섭의 <삼대>(1931) 등 소위 도시소설들에 기독교적인 세계가 반영된 면이 있었다. 그런데 <무정>이나 <재생> 등에서 어느 정도 기독교 세계를 보여주었던 춘원도 그의 농촌소설 <흙>(1932)에서는 기독교 세계를 거의 반영시키지 못했다. 이렇게 볼 때, <상록수>는 ‘농촌소설’에 기독교 문제를 끌어들인 첫 번째 작품이 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기독교 농촌소설’의 본격적인 첫 작품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다음으로 <상록수>란 작품의 의의는 이 소설이 기독교 세계관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맨 처음으로 반영시킨 작품이란 점이다. 도시소설이건 농촌소설이건을 불문하고 <상록수> 이전에는 기독교 세계관을 긍정적이고도 적극적으로 반영한 작품이 거의 없었다. 이광수·김동인의 작품들은 물론, 염상섭의 <삼대>마저도 기독교 세계관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관점에서 반영시켰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염상섭의 <삼대>는 기독교소설로서도 문제작의 하나임엔 틀림없지만, 그러나 그 기독교 세계관이 독자 대중에게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전달되는 작품이라곤 보기 어려운 면이 있다. 어느 면 부정 위에다 희미한 긍정의 세계를 구축해 보려는 노력이 엿보인 작품 정도로 봐줄 수나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하면 <상록수>는 기독교 긍정에의 굵은 선을 드러내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 작품의 다른 의의를 찾는다면 그것은 <상록수>가 기독교 실천문학 작품 계열에 속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방면에서도 이 작품은 한국 기독교문학사에서 아마도 효시의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70~80년대의 소설계에 이른바 실천문학 작품들이 우리나라에서 양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기독교 실천문학’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에도 그 수십 년 전에 산출된 소설 작품 <상록수>의 위상은 결코 도외시될 수 없는 면이 있다 하겠다. (70년대에서의 이 방면의 희귀한 예외가 황순원의 1973년 작품 <움직이는 성> 정도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상록수>에서 한 가지 더 어떤 의의를 찾아본다면 그것은 이 소설이 한국 기독교소설사에서 명실상부한 여성 주인공을 첫 번째로 등장시킨 작품이란 것이다. 물론 필자는 우리나라의 ‘장편소설’들을 대상으로 해서 이런 평가를 내리고 있는데, 가령 염상섭의 <삼대> 속의 홍경애가 주요인물 김병화의 짝으로서 여성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하더라도 역시 그녀는 긍정적이고도 적극적으로 교회 내에서 활동하는 인물은 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상록수>의 여주인공 채영신의 위상(희생적인 실천적 신앙인 상)에는 이르지 못한다는 점에서 볼 때, 이 작품이 명실상부한 기독자 여주인공을 맨 처음 부조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상록수>보다 십여 년 앞서 나온 이광수의 <재생>의 여주인공 순영이도 여기서 논의의 대상으로 떠올릴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그녀의 ‘자진(自盡)’ 사건으로 인하여 그녀 자신의 기독교도로서의 최소한의 위상마저도 완전히 흔들어 놓았다는 점을 도외시할 수 없다면, <재생>의 순영이는 <상록수>의 채영신과는 나란히 논할 수 있는 위치의 여주인공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불가불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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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바탕의 농촌계몽 소설(4)-심훈의 「상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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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문학회 30주년 행사, 목양문학상 시상과 공로패를 증정
- ◇「목양문학」이 30주년을 맞아 한국기독교회관에서 ‘목양문학 30주년 기념 목양문학상 시상 및 한국목양문학 제25집 출판기념식’을 가졌다. 목양문학회가 30주년을 맞아 지난달 30일 한국기독교회관에서 ‘목양문학 30주년 기념 목양문학상 시상 및 한국목양문학 제25집 출판기념식’을 가졌다. 이날 감사예배와 출판기념식, 시상식, 공로패 증정식 등 풍성한 행사로 드려졌다. 그럼에도 참여 인원을 제한하여 방역지침을 철저히 준수하는 등 안전한 환경 속에서 모든 일정이 진행됐다. 이날 한국목양문학상 김정석목사(시)와 문장식목사(수필), 안준배목사(평론)가 수상했다. 이 행사에서는 창립회원과 공로회원들을 향한 공로패 증정식도 마련됐다. 이에 따라 고훈, 정려성, 박영률, 박재천, 최세균, 유한귀, 박종구목사가 창립회원으로, 김재남, 홍문표목사가 심사위원으로, 고환규목사가 시 낭송분야에서 공로를 인정받아 공로패를 증정받았다. 또한 이날 차기 임원진이 발표된 가운데 전담양목사가 한국목양문학회 신임회장으로 추대됐으며, 박상기전임회장에게 공로패가 증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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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문학회 30주년 행사, 목양문학상 시상과 공로패를 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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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바탕의 농촌계몽 소설(3)-심훈의
- 이광수의 <흙>(1932) 연재와 심훈의 <상록수>(1935) 연재가 겨우 3년이란 시간차밖에는 나지 않는데도 두 작품이 상당한 세계관의 차이를 보여주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되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로 두 작품 모델의 생동감 여부가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게 된다. 이광수의 <흙>에는 평소 그 주인공의 모델로 채수반이란 인물이 내세워졌던 것과는 달리, 실제로 어떤 살아있는 모델이 따로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대신 좀 억지스럽게 표현해 본다면, 그 작품의 남녀 모델은 바로 그의 처녀 장편소설 <무정>(1917)의 남녀 등장인물들이었다고 표현해 볼 수 있으리라. <흙>의 허숭의 모델은 <무정>의 이형식이며, 마찬가지로 윤정선의 모델은 김선형, 그리고 유순의 모델은 박영채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두 작품 상호간의 짜임새는 매우 유사한 데가 있다. 말하자면 이 두 소설은 <무정>의 도시 무대가 <흙>의 농촌 배경으로 바꾸어지고, 등장인물 ‘이형식-박영채-김선형’ 사이의 삼각연애 관계가 ‘허숭-유순-윤정선’ 사이의 그것으로 바뀌어 나타났을 뿐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두 작품 상호간에는 구성 면에서의 핍진(逼眞)한 친근성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여기서 춘원 이광수의 <흙>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바로 그(춘원)의 전작 <무정>의 주요 인물들이 그 모델로 쓰이게 된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을 하게 해 주는 바 있다. 그러나 심훈의 <상록수>의 남녀 주인공은 그 실제 모델이 엄연히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박동혁의 모델은 심재영, 그리고 채영신의 모델은 최용신이라고 한다. 심 군은 경성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진학을 권유하는 부모의 뜻을 거슬러 충남 당진군(송악면 부곡리)에서 농촌운동을 전개한 작가의 큰 조카이고, 최 양은 경기도 수원군(반월면 천곡리)에서 역시 농촌봉사 활동을 하다가 과로에 지쳐 쓰러진 채 운명한 기독교(YWCA) 계통의 여성운동가였다. 특히 모델 최용신은 일제 강점기에 <성서조선>의 발행인으로 활동했었던 무교회주의 종교가 김교신 선생의 각별한 관심까지 끌었던 여성 지도자로서, 그녀의 투철한 신앙심이 바로 그녀의 그 불굴의 정신력의 바탕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두 모델이 실존 인물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 두 사람(심재영과 최 용신)이 실제로 서로 사귀거나 사랑해 본 적은 없었다고 하는데, 작가는 이 두 인물을 소설 구성을 위하여 허구적으로 접목시켰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농촌봉사 활동에 뛰어든 남녀 생존 인물들을 작품의 모델로 사용한 <상록수>가 전혀 그렇지 못한 <흙>보다 더 생동감 있는 표현을 얻게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박동혁이 자기 고향 한곡리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관심을 기울인 곳은 경제적 모순을 타파하고 사회개혁을 실현하는 분야였다. 이에 비하여 채영신이 낯선 고장 청석골에서 벌인 봉사활동은 이른바 문맹퇴치 운동과 같은 문화사업을 추진하며 정신적인 계발에 힘쓰는 일이었다. 이것마저도 그녀의 건강 상태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기 한 몸을 돌보지 않고 그곳 주민들을 위해 제 몸을 온전히 불살랐던 것이다. 그녀는 속죄양 의식, 곧 투철한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살신성인의 ‘희생 봉사’ 정신이 너무도 강하고 또 확고했기 때문에 그 어려운 일(봉사활동)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작품의 실제 모델이었던 최용신과 <상록수>의 여주인공 채영신은 이렇게 서로 행복하게 결합되어 오늘날 우리에게 기독교적인 구원의 여인상들로 남아 있는 것이다. /조선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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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바탕의 농촌계몽 소설(3)-심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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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도 시집 「지상의 언어」 영역본 출간
- 박이도시인(사진)의 시선집 「지상의 언어」(창조문예사)의 영역본 「Language on the Surface of the Earth」가 출간됐다. 이 시집은 지상에서 천상을 향한 영원성을 추구했다. 「지상의 언어」는 지난 2013년 일본에서 출간된 시집으로, 그 대역본이 같은 해에 국내에서 국문으로 발간됐다. 이 시선집은 시인의 대표적 시들을 엮은 만큼 그의 시적 경향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박이도시인은 “후반기에 와서 특히 시가 짧아지는 등 어쩔 수 없이 인생론적인 경향을 띄게 된다. 흔히 ‘서정적 자아’라고 말하는데, 사물을 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발전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성의 확인으로 나아가는 것을 경험한다”고 이 시선집을 소개했다. 「지상의 언어」는 △황제와 나 △어느 인생 △을숙도에 가면 보금자리가 있을까 △축제의 노래 △민담 시집에서 등 5부로 구성됐으며 110여 편의 시를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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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도 시집 「지상의 언어」 영역본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