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4-23(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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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선교/해외 검색결과

  • "한국교회 성령운동의 핵심, 확산에 기여" 길선주목사와 조용기목사의 성령운동 조명
    ◇한국기독교성령역사연구원은 길선주목사와 조용기목사의 성령운동에 대해 되돌아보며 앞으로의 역할에 대해 모색했다.   길선주 , 초기에 한국교회 성령운동의 핵심 한국교회의 성령운동 확산에 앞장, 조용기    한국기독교성령역사연구원(원장=안준배목사)은 지난 17일 한국기독교성령센터에서 「길선주목사와 조용기목사의 성령운동」을 주제로 한국기독교성령 120주년대회 세계성령운동중앙협의회 창립 36주년 성령포럼을 진행했다.        이날 포럼은 김창곤목사의 사회로 이영훈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와 소강석목사(새에덴교회)가 축사를 전했다. 또한 포항안디옥교회 배진기목사가 「길선주목사와 조용기목사의 메시지」란 제목의 발제를 했다. 배박사는 “길선주목사는 한국 장로교 최초의 7인 목사 중 한 사람으로, 초기 한국교회의 핵심 역할을 맡으며 많은 사람을 개종시키고 교회를 설립했다. 그의 구도적 열정은 어릴 때부터 진리를 찾고자 하는 열망으로 시작되었으며, 평양대부흥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면서, “길선주목사의 메시지는 구도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수도 생활의 체험에서 비롯되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도 구도자의 길을 깊이 추구했다. 그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득도의 체험을 하였고, 그의 설교는 '내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라는 강력한 간증으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또한 배목사는 “길선주목사는 단순한 구도를 넘어 신앙생활의 성숙을 이루는 수도(修道)로 메시지의 깊이를 더했으며, 380만여 명에게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교회를 세웠다”면서, “그는 매일 한 시간씩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신앙적인 성장을 이루었고, 이러한 수도 생활이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기초가 되었다”고 말했다.    또 배목사는 “1907년 1월,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열린 사경회에서 1,500여 명의 성도가 모여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다. 이는 길선주목사의 지도 아래 이루어졌다”며, “한국교회의 아버지로 불리는 길선주목사의 메시지는 성령의 일하심이 분명한 초기 한국교회 성령운동의 핵심이었다. 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하는 일도의 메시지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배목사는 “조용기목사의 메세지는 핵심이 분명하다”면서, “설교자가 때로는 주제와 본문이 맞지 않고, 핵심을 잃어버릴 때가 많은데 메시지는 항상 핵심이 분명해야 한다”고 전했다.    또한 “조용기목사는 설교의 내용을 청중이 거부감 없이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되게 해 설교에 집중하게 하라, 선포적 언어메세지를 사용해 청중이 믿음을 얻고 아멘으로 화답하게 하라, 탁월한 단어선택을 하도록 노력하라, 성도들이 입으로 고백할 수 있도록 간단, 분명, 정확하게 요약된 문장을 정리해 주라고 했다”면서, “그의 메시지는 언어가 탁월했다”고 말했다.    또 배목사는 “조용기목사는 항상 자신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삶에서 실천했기에 행동메세지가 강력했다”면서, “그는 일상의 삶에서 성령님과 밀접하게 교제하는 코이노니아를 이룬 사람이었다”고 강조했다.    한국기독교성령역사연구원 원장인 안준배목사는 「길선주목사와 조용기목사의 한국교회 연합운동」이란 제목으로 발제했다. 길선주목사의 한국교회 연합운동과 조용기목사의 92세계성령화대성회를 중심으로 한국 기독교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에 대해 나눴다. 안목사는 “길선주목사는 한국교회 초기에 연합운동을 주도하고, 한국적인 영성을 추구하며 민족문화와 기독교신앙의 조화를 시도했다”면서, “조용기목사는 92세계성령화대성회를 통해 한국교회의 성령운동을 확산시키고 이를 통해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또한 안목사는 “92성회에서는 성령운동과 회개의 기도가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여의도광장에서 수많은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도와 찬양의 시간을 가졌다”며, “이 성회는 과거 복음화운동과는 다리 성령의 능력에 중점을 두고있는 ‘성령화’성회로서, 참가자들은 성령의 역사와 은혜를 체험하며 각성을 이루게 되었다”고 전했다.    또 안목사는 “길선주목사는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오순절역사를 시작으로 교회행정과 신앙생활을 정립했으며, 여러 체계적인 제도를 도입했다”면서, “그리고 그는 한국인이자 기독교인으로서 민족문화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해 3.1 독립운동의 주도적 인무로 역사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개신교가 한국에 전해진 한 세기동안 한국교회는 1천만 성도와 5만여 교회로 급속히 성장했지만,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과 사회적 기여는 부족했다”면서, “한국교회는 회개와 정화를 통해 참된 신앙과 도덕적 가치관을 정립해야 하며, 사회적 호소력과 영향력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 1992년 성회가 이 필요를 채우는 성령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전했다.    한편 패널에는 박흥일장로와 윤민자목사, 백 충목사가 참여해 한국기독교성령 120주년과 두 목사의 역할에 대한 고찰, 그리고 감사에 대해 나눴다.
    • 신학/선교/해외
    • 영성
    2025-04-21

출판/문화/여성 검색결과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3)
       동호는 키 순서로 배정되는 교실에서 언제나 맨 앞에 앉는 아이였다. 상황실에서 온 진수 형은 열일곱살 고1 어린 동호를 보고 여기 있는건 힘든데, 집에 들어가라고 했다. 그러나 동호는 고3이라고 둘러대며 상무대 자리를 지켰다.  동호가 장부에 기록한 인적사항들은 진수가 벽보에 써서 도청 정문에 붙였다. 그걸 직접 보거나 전해듣고 나타난 가족들에게 동호는 흰천을 열어 죽은 몸들을 보여주었다. 사자의 몸을 덮고 있는 흰천은 순수하고 깨끗하다. 흰천은 죽은 것이 아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한다.    입관을 마친뒤 약식으로 치루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불렀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 놓았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태극기로 관을 감싸고 그 앞에서 애국가를 부른다. 왜일까?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 군인들이 권력을 잡으려고 총을 쐈다. 그들은 나라가 아니기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쓰러진 사자를 추도하며 유족들은 애국가를 불렀다. 복도 여기저기서 동시에 입관이 치러졌다.  흐느낌 사이로 돌림노래처럼 애국가가 불러졌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그 다른 세상이 계속됐다면 지난주에 너는 중간고사를 봤을 거다. 시험 끝의 일요일이니 오늘은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마당에서 정대와 배드민턴을 쳤을 거다. 지난 일주일이 실감되지 않는 것만큼이나, 그 다른 세상의 시간이 더 이상 실감되지 않는다.  학교 앞 서점에서 문제집을 사려고 혼자 집을 나선 지난 일요일이었다. 갑자기 거리에 들어찬 무장 군인들이 어쩐지 무서워 너는 천변길로 내려가 걸었다. 신혼부부로 보이는, 성경과 찬송가 책을 손에 든 양복 입은 남자와 감색 원피스 차림의 여자가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몇차례 위쪽 도로에서 들리더니, 총을 메고 곤봉을 쥔 군인 셋이 언덕빼기를 타고 내려와 그 젊은 부부를 둘러쌌다. 누군가를 뒤쫓다 잘못 내려온 것 같았다.   무슨 일입니까? 지금 저흰 교회에……    양복 입은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사람의 팔이 어떤 것인지 너는 보았다. 사람의 손, 사람의 허리, 사람의 다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았다. 살려주시오. 헐떡이며 남자가 외쳤다. 경련하던 남자의 발이 잠잠해질 때까지 그들은 멈추지 않고 곤봉을 내리쳤다. 곁에서 쉬지 않고 비명을 지르다 머리채를 잡힌 여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너는 모른다. 덜덜 턱을 떨며 천변 언덕을 기어올라 거리로, 더 낯선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거리로 들어섰기 때문이다.(24-25쪽)  동호는 일요일에 천변길에서 목격한 성경 찬송가책을 손에든 신혼부부가 군인들에게  곤봉으로 마구 난타당하는 광경이 뇌리에 박혔다. 동호네 사랑채에 세들어 살던 정대와 그의 누나 정미는 방직공장에 다니며 검정고시 보기 위해 공부를 했다. 동호 친구 정대가 광장에서 옆구  리에 총을 맞는 것을 봤다. 동호는 친구 정대와 정미 누나도 생사를 알 수 없었다. 동호는 상무관 출입구의 탁자 앞에 앉아 있다. 탁자 왼편에 장부를 펼쳐놓고, 죽은 사람의 이름과 일련번호, 전화번호나 주소를 십육절 갱지에 큼직하게 옮겨 적었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5-04-21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 (11)
      작가는 세 여성의 시각으로 칠 년에 걸쳐 서사했다. 정심은 학살에서 살아남은 뒤 오빠 정훈의 뼈 한조각이라도 찾아내 장례를 치르고자 싸웠다. 작가는 인간성의 바다 아래로 계속 내려가서 마침내 심해의 바닥에서 촛불을 밝혔다. 정심이 그녀의 오빠 정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은, 이별을 짓지 않음은 지극한 사랑인 것이다. 불어 번역 제목처럼 불가능한 작별Impossibles adieux이다. 제주 4.3의 피해자들은 한강 작가에 의해서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간 것이다. 4.3 은 사랑이 고통으로 이어져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는 시적 서사이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누구에게나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 지를 알게 한다. 작가는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끝내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오월 광주, 소년이 온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 의 영문 제명이 휴먼 액츠 Human Acts 로서 소년 동호의 넋이 온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등장인물 동호 정대 정미 은숙 선주 진수는 인간이라는 폭력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진 것처럼 보인다. 1986년 5월 18일부터 28일 까지 열흘 간 자행된 국가 권력의 무자비한 폭력 행위 앞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한강 작가는 묻고 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제 와서 인간을 믿을 수 있고 또 인간적 삶을 껴안을 수 있는가를 묻는다. 어린새 동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한강은 ‘광주의 열흘’ 간 벌어진 잔혹한 학살의 참상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어린 새, 동호는 좋은 말로 할 때 들어 당장 집에 들어와 동호는 단단히 화가 나 있던 작은형의 목소리를 털어 내버리고 상무관에 있는 관을 지킨다. 동호는 장부에다 그들의 이름과 관 번호를 덧붙여 쓴뒤, 긴 괄호로 목록을 묶고 ‘합동추도식 3’ 이라고 적었다. 다음 추도식을 할 때 같은 관이 또 나가지 않으려면 잘 기록해 둬야 한다고 진수 형이 당부했기 때문이다. 애국가가 끝났는데도 아직 관이 정리되지 않았나보다. 군중의 웅성거림 사이로 누군가 울부짖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시간을 벌기 위해선지, 마이크를 쥔 여자가 이번엔 아리랑을 부르자고 한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울음소리가 잦아들 즈음 여자가 말한다. 먼저 가신 임들을 위해 묵념합시다. 수천사람의 웅성거림이 일제히 멎은 순간, 주변의 정적이 갑자기 도드라지게 느껴져 너는 놀란다. 함께 묵념하는 대신 일어선다. 옆구리에 장부를 끼우고, 반쯤 열어 놓은 상무관 출입문을 향해 계단을 오른다. 바지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쓴다. 초를 태워도 아무 소용 없네. 냄새를 견디며 너는 강당에 들어선다. 날이 흐려 실내는 마치 저녁 무렵 같다. 출입문 쪽으로는 추도식을 마친 관들이 가지런히 모여 있고, 아직 가족이 나타나지 않아 입관을 못한 서른 두 사람의 몸들은 흰 무명천에 덮인 채 넓은 창 아래 누워 있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5-04-04
  • [현대문학산책]한강,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시적 산문(10)
    내가 미리 보지 않았다면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을, 흑과 백만 남기고 그 사이의 색조와 세부가 지워진 사진이다. 그 페이지의 갈피에 중앙 석간지 사회면의 단신 스크랩이 끼워져 있다. 전체적으로 손때가 묻은, 가로와 세로로 접혔다 펴지며 생긴 십자 선이 희끗하게 닳아 있는 신문 조각이다. ‘사형언도’라는 단어에서 가장 복잡한 글자 아래 독음을 적은 청색 볼펜 글씨‘도’를, 그 옆의 여백에 눌러쓴 대구 국번 전화번호를 나는 읽는다. 이 번호는········ 이것과 같아,  손을 뻗어 소책자의 페이지를 더 넘겨간 인선의 손이 마지막 장 하단을 가리킨다. 회비와 성금을 보낼 농협 계좌번호와 예금주의 이름, 그리고 대구 국번의 전화번호가 인쇄되어 있다. (278-279쪽) 그후로는 강정심이 모은 자료가 없다. 삼십사 년 동안. 군부가 물러가고 민간인이 대통령 될 때 까지. 결국 인선의 엄마는 실패했다. 오빠 강정훈의 뼈를 찾지 못했다. 단 한 조각도. 그 삼 년 동안 대구 실종 재소자 제주 유족회가 광산을 방문했다. 인선의 엄마 정심의 나이가 일흔둘에서 일흔넷. 무릎 관절이 악화되던 때이다. 인선의 아버지는 대구형무소에서 십오 년의 형기를 마치고 돌아왔다. 고문으로 얻은 수전증이 있었지만, 신세 지는 집의 귤 농사를 거들었다. 감옥에서 보낸 마지막 몇 년간 타일 기술도 배워서, 보수 없이 마을 일을 해주며 천천히 평판을 쌓았다. 허지만 군사 정권하에 한 달에 두 번 경찰이 동태를 조사 하러 오는 전과자와 허물없이 지내려 하는 사람은 없었다.인선의 아버지는 아내 정심을 대면하고 그후로도 오 년이 더 흘러서 중산간 집에 들어왔다. 인선의 아버지는 아내에게 주정공장에서 계급장 없는 군복을 입고 이북 말을 쓰던 남자가 옷을 벗기고 의자에 거꾸러 매달 때마다 한 말을 들려 주었다.  씨를 말릴 빨갱이 새키들, 깨끗이 청소 하갔어. 죽여서 박멸하갔어, 한 방울이라도 빨간 물 든 쥐새키들은  수건이 덮인  아버지 얼굴에 그 사람이 끝없이 물을 부었다. 젖은 가슴을 야전 전화선으로 묶고 전기를 흘러 넣었다. 산사람과 내통한 친구들의 이름을 대라고. 그 사람이 속삭일 때마다 아버지는 대답했다. 모루쿠다. 죄 어수다. 나 죄 어수다.(297쪽) 정심은 남편이 당한 고문의 이야기를 듣고 오빠에게 했던, 오래 후회하게 될 말을 기억한다. “오빠 머리가 무사그러멘? 머리가 이상해” 정심은 인간이 인간성을 포기해야 하는 고문의 증상을 보고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마다 정심은 맥락없이 자책했다. 누군가가 퓨즈를 끊은 것 같이 우두망찰 정신이 반나마 나가 있었다.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게 한 사랑의 서사 한강은 2014년 여름, 오월 광주에 대한 < 소년이 온다>를 낸지 두 달 가까이 지났을 때였다. 작가가 꾼 꿈이 <작별하지 않는다>의 서장에 해당하는 4페이지이다. 한강 작가는 2014년 여름에 꿈을 꾸었다. 꿈을 꾸고 나서 기록해 두었다. 무언가 자신에게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기에.  그후 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작가는 그 꿈의 의미를 되새겼다. 소설의 처음은 경하와 인선이 함께 끌고 가지만. 이어 달리기에서 마지막 주자가 중요한 것처럼 진짜 주인공은 인선의 어머니 정심이다.
    • 출판/문화/여성
    • 문학
    2025-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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