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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 선 행복칼럼-65

의사로 성경번역자로 사역한 존 헤론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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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10.1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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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는 대한민국을 사랑한 선교사와 그의 가족들 145명이 잠들어 있습니다. 이들 중 가장 먼저 양화진에 안장된 선교사는 존 헤론입니다. 그에겐 세상의 부귀를 누릴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지만 모두 뿌리치고 가장 가난하고 은둔의 나라인 조선 땅에 그의 열정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의료선교 5년의 사역을 마치고 천국으로 이사 한 그의 묘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The son of God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라고 쓰여 있습니다.

 

존 헤론(John W. Heron, 1856-1890, 惠論)1856년 영국 더비셔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과 14세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헤론은 18705월에 미국 테네시 주의 테네시 주립 대학교 의과대학과 뉴욕종합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을 졸업하였습니다. 의사 자격시험을 준비하던 중에 참석한 부흥회에서 강한 성령체험이 있었고 이제 준비가 끝났으니 땅 끝으로 가라!”는 말씀에 따라 자신의 사역지를 찾게 되었습니다.

선교잡지를 읽던 존 헤론은 조선의 이수정이 쓴 조선에 선교사를 보내 달라는 편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한국 의료 선교사로 지원한 존 헤론은 한국으로 파송하는 미국 북장로교 최초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었습니다. 한국에 입국하기 전 일본에 2개월 동안 머물며 이수정에게 조선말을 배우고 문화를 익힌 후 1885621일 서울에 도착하였습니다.

이수정(李樹廷, 1842~1886) 조선 말기의 개신교 신자이자 성경번역가로 한국인 최초의 세례자입니다. 그는 아직 복음을 알지 못하는 조선에 선교사를 파송해 달라는 편지를 미국교회에 두 차례 보냈습니다. 이 편지는 선교잡지 미셔너리 리뷰에 실리게 되었고, 이 일은 많은 미국 선교사들이 조선 땅을 밟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이수정은 조선의 마케도니아인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수정은 또한 성경 번역에 대한 사명을 가지고 1885년 미국 성경공회 루미스(Loomis, H.) 선교사와 함께 마가복음을 한글로 번역한 최초 한글성경 신약전서 마가복음서 언해를 출판하였습니다.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가 조선에 첫 발을 들여놓을 때 가지고 왔던 한글성경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조선에 도착한 헤론은 의료사역과 문서사역을 하였습니다. 선교사 알렌과 언더우드와 함께 광혜원에서 의료사역을 시작하여 광혜원 2대 원장과 고종황제의 시의(侍醫)가 되었습니다. 또한 왕족과 양반계급을 위한 광혜원제중원으로 바꾸어 모든 백성들이 의료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언더우드와 올링거 선교사와 함께 1890년 조선성교서회(The Korean Religious Tract Society)를 창설해 의료선교뿐 아니라 기독교문서 사역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이를 통해 수많은 초기 한국교회 전도문서들이 출판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1887년에는 성경번역 상임위원회의 번역위원을 역임하며 낮에는 병원에서 의사로, 밤에는 성경번역자로 쉼 없이 이 땅을 섬겼습니다.

 

존 헤론 선교사는 자신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보배롭게 여긴 사람이었습니다. 조선 땅에 복음의 빛을 밝게 비추는 예수님의 손에 붙들린 별이었습니다. 1890년 여름 선교사들이 더위를 피해 남한산성에서 재충전하는 시기에 헤론은 휴가 일정을 줄여서 서울로 돌아와 환자를 돌보다가 이질이 발병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계속해서 조선 사람들을 치료하다가 결국 쓰러졌고 위독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남한산성 휴양지에서 밤새도록 가마타고 집으로 돌아온 부인과 두 딸 그리고 조선의 친구들에게 유언 같은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한국과 한국인을 더 뜨겁게 사랑하고 싶소라고 말입니다. 또한 병원에게 함께 일하던 조선인들을 부르게 하고 예수님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믿으십시오.” 라고 복음을 전하고 우리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1890726일에 34세의 나이로 소천 했습니다.

그는 조선에서 5년간의 사역을 통해 기독교 선교사역의 기초를 놓았으며, 근대 의학교육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의료사업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였고 성경 번역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선교회 공의회가 조직 될 때 회장으로 수고했으며 전도책자 번역과 출판에 공헌을 했습니다. 아울러 정동 사택에서 조선인들을 전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죽음을 계기로 양화진에 외국인과 선교사들을 위한 묘지를 마련되었습니다. 이처럼 존 헤론 선교사는 조선을 위해 남김없이 불태우고 영원한 주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한국사회는 초기 선교사들에게 큰 빚을 지었습니다. 그들은 의료, 교육, 학교, 전도, 번역 출판, 인권, 사회복지, 교회 설립 등에 공헌을 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이들의 순교 사역의 초석 위에 세워진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교만하지 않고 겸손히 영혼구원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회로 발전하기 위하여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지역사회에서 사명을 다하며 살아갑시다, 그리고 참으로 어려운 시대적인 환경 속에서도 헌신한 선교사들에게 감사하면서 나의 삶과 사역 속에서 비전을 찾아 조금 더 힘을 내어 승리하시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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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Th.D., Ph.D.)

전 안양대학교 외래교수

전 건신대학원대학교 조교수

서울극동방송 수요일 은혜의 단비 칼럼니스트

포항극동방송 월요일 생명의 말씀 칼럼니스트

OCU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세계로부천교회 담임목사

저서: 희망 아름다운 세상, 존낙스의 정치사상,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그대 고마워라, 소중한 만남, 기독교 집단상담, 김치선 박사와 이성봉 목사의 삶과 신앙(2018 킹덤북스)외 전자책 15권 이상

한국문학방송작가회310명 출간 작가 중 7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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