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5(금)

[대담] 창립 131주년 맞은 대한기독교서회 사장 서진한목사

‘신학’과 ‘교회현장’의 가교가 필요한 출판을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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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11.2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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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년전 한글출판에 원칙을 세우고 한글의 보편화에 기여

연합기관으로 한국교회 위기와 문제를 극복하는 출판 준비 


대한기독교서회가 창립 131주년을 맞았습니다. 오는 23일 기념예배를 드린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지난 10월 5일 이를 기념하는 뜻 깊은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고, 이 행사는 교계뿐 아니라 일반 언론사도 큰 관심을 갖고 보도를 했습니다. 그만큼 서회의 역사는 한국교회와 사회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한편 인터넷 매체의 비약적인 발달로 출판 환경은 이전과는 달리 점점 위축되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서회의 역사와 의미, 앞으로의 전망 등에 대해 서진한 사장님에게 듣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한국 최초로 설립된 교회연합기관

△서사장=기독교서회가 1890년에 설립되었으니 올해 131주년입니다. 지난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기념행사를 할 상황이 아니어서, 올해 130주년 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기념행사를 준비하면서 지난 역사를 다시금 찬찬히 살펴보게 되었는데, 알면 알수록 130주년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한국교회만 아니라 한국사회에 큰 역할을 하였던 지난날이 자랑스럽지만, 그 역사를 계승해야 할 오늘 우리의 과제가 무겁게 다가옵니다.

 

▲서회는 1890년 장로교 선교회와 감리교 선교회가 만나서 연합기관을 만들며 출발했습니다. 교회사적으로 매우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봅니다. 

△서사장=기독교서회는 장·감 선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하였다는 점에서 한국에서 최초로 설립된 교회연합기관, 선교연합기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가 오래된 대한성서공회조차 기독교서회가 설립되고 나서 5년이 지나 영국성서공회의 지부로서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는 아직 한국에 교단이라는 형태의 조직이 생겨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이로부터 약 30년이 지나 교단들이 조직되고 교단들이 함께 참여하게 됩니다.

 

선교 초기나 한국교회 초기에는 연합의 정신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의 신앙이고, 하나의 교회이니 교파가 달라도 서로 협력하여 선교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장·감이 주축이 되었다고 하나, 서회의 초대 전임총무는 본윅이라는 구세군 사관이었습니다. 교파의 벽을 넘어 모두 하나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교단 중심주의가 강하게 형성되면서 연합사업은 점차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교단의 힘보다 대형교회의 힘이 더 커졌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해외선교도 교회별로 하는 것이 오늘날의 사정입니다. 따라서 공교회의 연합활동은 더 위축되고 있습니다. 다시금 선교 초기의 정신으로 돌아가 하나의 신앙, 하나의 교회라는 생각으로 서로의 차이를 뛰어넘는 협력의 기틀을 마련하고 공동의 선교활동을 강화해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한국 기독교의 신학적 논의를 촉발

▲서회와 한글 보급의 관계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회의 출판물이 한글 보급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기독교가 ‘한글’을 주시한 이유와 서회의 역할이 지대했습니다.

 

△서사장=15세기에 반포된 한글은 수백 년 동안 공식 언어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선교사들이 처음 내한했을 때 우리나라는 여전히 한문과 국문이라는 이중 언어생활을 하고 있었지요. 한문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가운데 부녀자들을 위시한 민중들만이 언문으로 불리는 한글을 사용했습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내한한 선교사들은 한글을 배우는 것으로 선교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한글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고유문화와 전통, 종교와 역사를 접하였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한글은 자연스럽게 기독교 안으로 스며들었습니다. 한글의 편리성과 우수성을 인식한 선교사들은 ‘선교 언어’로 한글을 채택하고 성경과 찬송가, 각종 기독교 문서를 한글로 발행했습니다. 

 

조선예수교서회 헌장 제2조에 보면 “조선어로 기독교 서적과 전도지와 정기 간행의 잡지류를 발행하여 전국에 보급하기 위하여” 설립되었습니다. 설립 초기부터 한글 출판의 원칙을 세운 서회는 많은 영역, 많은 종류, 많은 부수의 책을 한글로 펴내고 널리 보급함으로써 한글의 보편화에 기여하였고, 한글이 겨레의 주류 언어가 되는 데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서회는 단행본 이외에도 많은 정기간행물을 발행해온 것으로 아는데요, 특히 월간 「기독교사상」이 한국신학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남다르다고 봅니다. 

△서사장= 기독교서회는 그동안 「기독신보」, 「새벗」, 「가정생활」 등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다양한 정기간행물을 발행해 왔습니다. 현재 발행하고 있는 정기간행물은 격월간 묵상집 「다락방」과 월간 「기독교사상」입니다. 「기독교사상」은 1957년 6·25한국전쟁이 끝난 뒤의 혼란 중에 창간됩니다. 창간사를 보면 당시 기독교서회는 전후의 극심한 경제난과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는 데 사상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바른 신앙처럼 바른 사상을 세워야 한국사회가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고 본 것이겠지요.

 

「기독교사상」은 창간 이후 한국 지성계의 대들보 역할을 하면서 한국사회와 민족, 그리고 교회와 신학을 위한 매체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바로 여기서 기독교의 비종교화, 세속화신학, 해방신학, 여성신학 등이 소개되었으며, 토착화신학과 민중신학이 배태되었습니다.

5공 시절에는 6개월간 정간을 당하기도 하였는데, 그때를 제외하고는 한 호도 거르지 않고 지금까지 발행되고 있습니다. 「기독교사상」은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는 에큐메니컬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변화하는 사회문화적 상황 속에서 한국 기독교의 신학적 논의를 촉발하는 한편, 한국 기독교의 다양한 신학사상을 해외에 널리 알리는 통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찬송가 관련 저널발행해 연구심화 

▲서회는 출판사로 알려져 있지만 구성을 보면 한국교회의 주요 교단이 참여하는 연합기관으로서의 성격도 갖고 있습니다. 

△서사장= 기독교서회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참여하는 회원이지만, 교회협의회에 속한 기관은 아닙니다. 교회협의회는 기독교서회가 활동을 시작한 뒤 약 30여 년이 지나 교단들이 조직되면서 조선기독교공의회라는 이름으로 출범하였습니다. 이 출범에 도리어 기독교서회가 크게 기여하였을 것입니다. 해방 후 기독교공의회는 기독교연합회라는 이름으로 개칭되는데 이때에도 교회협의회는 종로의 기독교서회 건물 내에 있었습니다.

 

기독교서회는 교회협의회와 긴밀히 협력하는 관계에 있습니다만, 기관의 성격과 역할이 다릅니다. 기독교서회는 활자 또는 출판을 통해 선교를 하는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교회협의회는 회원교단과 기관들의 회비를 기본으로 삼지만, 기독교서회는 자립적 재정 구조를 마련해야 하는 기관입니다.

 

 

▲ 기독교서회는 한국교회 최초의 찬송가인 『찬미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찬송가를 발행해오고 있는데요, 초기 찬송가가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현 찬송가의 문제는 무엇인지, 또 찬송가의 발전을 위해 서회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가요?  

△서사장= 기독교서회는 창립 초기부터 찬송가를 개발하고 발행해 왔습니다. 선교사들은 한국인 조사(돕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서양 찬송가를 번역하였고, 또 당시 조선인들이 쉬 접근할 수 있도록 5음계를 감안하여 편곡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선교사들의 보고서에는 예순이 넘은 할머니가 찬송소리가 좋아서 찬송을 배우게 되고, 찬송을 제대로 부르고자 손녀에게 한글을 배운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찬송은 노래였기 때문에 당시 못 배운 분들, 특히 부녀자나 아동들이 쉽게 익힐 수 있었고, 이것은 복음전파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봅니다.

 

해방 이후에 한국교회의 찬송가가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의 『신편』, 『신정』, 『부흥성가』로 분열되었을 때도 기독교서회는 기독교연합회(교회협의회)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교단 지도자들을 설득하여 결국 하나의 찬송가 『합동찬송가』를 펴내게 되었습니다. 

 

찬송가는 한국교회의 연합, 동시에 분열의 궤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원래 찬송가는 교회연합기관과 교단들이 관리하는 책이었으나, 일제하부터 이권을 생각한 사람들의 분열 획책, 또 최근 몇 십 년 사이에는 이권을 염두에 둔 일반 출판사업자들과의 복잡한 관계가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점보다 한국교회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한국교회가 이처럼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찬송가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한국적 심성, 한국인의 신앙고백, 한국적 선율이 아름답게 구현된 찬송들이 개발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현재 한국 신앙인들이 애창하는 동시대 음악에 대해서도 깊이 관심을 가지고 연구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1983년부터 찬송가공회가 설립되면서, 이런 연구의 역할이 찬송가공회로 넘어갔습니다만, 기독교서회는 향후 교회음악, 혹은 찬송가 관련 저널을 발행해서 이 분야의 논의와 연구를 심화해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새 시대의 사명을 모색할 출판 준비 

▲한국을 대표하는 기독교출판사로서, 또 연합기관으로서 현재 기독교서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와 앞으로의 방향과 계획이 궁금합니다. 

△서사장= 활자의 시대, 출판의 시대가 급격히 기울어 갑니다. 하지만 기독교서회는 출판을 도구로 삼아 출범한 연합기관이라 여전히 글자와 문서를 중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6·25한국전쟁 이후 북쪽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월남했고, 남쪽에 여러 개의 신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신학교 숫자가 많아진 것은 교단 분열의 탓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학교의 재정은 극히 열악했고 더 심각한 것은 교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신학교들이 신학교육기관협의를 구성하고 기독교서회에 교재를 개발해 달라고 요청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기독교서회는 초기에는 번역서, 이후에는 한국인 저술서 등 각종 신학교재들을 개발하여 출판하였습니다. 세계교회협의회 신학교육기금의 도움도 받고 수십 년 동안 찬송가 판매의 이익금도 쏟아 부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신학교의 재정이 기독교서회보다 훨씬 커졌고, 신학교 출판부만 아니라 여러 출판사에서 신학책을 펴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서회는 한국교회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살피면서, 새 시대의 새로운 사명을 모색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한국교회의 문제로는, 신학교의 신학과 교회 목회 및 신앙생활의 괴리, 교회 내 청년 신도의 급격한 감소, 교회와 사회의 장벽 혹은 소통의 어려움입니다. 한국교회의 많은 관심과 기도가 절실합니다.

 

청년의 감소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교회의 언어는 이미 한국사회에 소통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게토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스님이나 신부님의 인생살이 관련 책은 비신앙인들 사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목사님들의 책은 딱 교계 안에서만 회자됩니다. 이 현실이 소통의 벽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초기 기독교는 한국사회에 가치관에서나 생활태도, 한글 보급이나 의료, 교육 등 문명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만, 이제 빛바랜 추억 정도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몇 가지 점들과 관련해서 기독교서회의 새로운 일들을 모색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물론 장기적으로 해야 할 일이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필수적인 과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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