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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11.2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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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신숙희.jpg

 

의대 본과 3학년 때, 성경을 읽다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는 마리아가 나오는 요한복음 12장에서 머물러 한참을 오열한 적이 있다. 그 여인이 어떠한 모습과 표정으로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렸을지, 또한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어떠한 눈빛으로 바라보셨을 지, 성경에서 자세히 묘사하지 않았어도 마치 눈 앞의 장면처럼 생생했다.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며, 그 말씀을 들으며 또 주의 몸에 향유를 붓는 기회를 누리는 마리아가 미칠 듯 부러웠고,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내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단 걸 알았다. 어렸을 때부터 신앙생활을 해 왔었지만, 정말 그때 처음 느낀 감정이었다. 신학적으로 그녀의 이 행위가 개인적인 고백이든, 다가올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비한 영적 행위이든, 아니면 이 모두이든 간에, 내게 마리아처럼 가장 귀한 것을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차 없이 그 발 앞에 엎드려 남김없이 부어 드리리라고 그때 그렇게 결심했었다. 

 

그 후 외과 의사가 되고, 목사의 아내가 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으며, 2017년에 선교사로 파송 받아 이 곳 브라질 상파울루로 왔다. 막상 현지로 오고 나니, 많은 상황들이 내가 알았던 것과 달랐다. 파송 받기 전에 얻었던 정보들은, 언어가 늘면서 직접 찾아보게 되니 잘못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한국 의사 면허를 브라질 의사 면허로 쉽게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들었었는데, 그 방법이란 게 다시 다 공부해서 포르투갈어로 된 시험을 치르는 것 밖에 없다는 걸 오고 나서 알게 됐다. 

 

열심히 언어 훈련을 하고 마약촌과 빈민촌 사역을 시작했지만, 의사로서 합법적으로 일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많은 이들이 걱정하며 기도해 주셨다. 의사가 필요한 곳이 얼마나 많은데 거기서 그러고 있느냐며, 선교지를 바꾸어 보는게 어떠냐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게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근이 있다면 그게 과연 뭘까 여러 번 생각해 봤었다. 그걸 그냥 부어 버리다니, 누가 봐도 낭비이고 아까워서 한 소리 나올 만한 그런 것. 외과 의사라는 직업을 참 좋아했고, 특히 수술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던 내가, 평생 수술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게 가장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교지에서 하루하루 사는 동안, 나는 의사인가, 사모인가, 선교사인가,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여러 번 고민하고 고민했다. 그 결론은, 이 땅에서 무엇을 하며 살든 나는 선교사이고, 주께 드린 약속대로 헌신하여 이 곳 브라질에 왔으며, 내가 아끼고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그것이 직업이든 뭐든 남김없이 그분께 드리겠다는 것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브라질을 강타한 중에 일일이 다 말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순간들을 지나, 올해 9월에 브라질 의사 면허가 나와서 이 땅에서 의사로서 합법적으로 사역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왜 내가 4-5년만에 포르투갈어로 된 의사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던 건지 나 자신 조차도 잘 모르겠다. 나의 향유 옥합이 의사 면허 일수도 있겠다고 단순하게 생각해 왔는데, 주님의 생각과 계획은 다르신 듯 하다.  모든게 그저 은혜임을 고백한다.

 

많이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아직도 내게 드릴 것이 남아 있음에 감사한다. 언젠가 주의 발 앞에 엎드리는 그 순간이 또 온다면, 내 손에 든 가장 귀한 것으로 모든 사랑을 담아 부어 드릴 것이다.  

/의사, 예장통합총회세계선교부 파송 브라질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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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옥합] 내게 있는 향유옥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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