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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3.04.03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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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정운상.jpg

 

부활은 성경에 여러 번 예언되어 있습니다. 또한 주님이 살아 계실 때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대로 주님은 다시 사셨습니다. 제자들은 믿지 못하고 의심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이를 보고 모두 흩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두움 속에 숨어 버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비겁했던 제자들이 어떻게 담대해졌으며 예수의 부활을 힘있게 증거하게 되었을까요? 이는 산 예수를 직접 만났기 때문입니다. 죽어도 사는 믿음을 가졌기에 새로운 용기와 능력을 힘입어 외쳤고, 그들의 외침이 오늘날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대낮의 밝은 길을 걸으면서도 마음은 절망의 어두움에 잠겨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게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지만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주께서 오셔서 저들의 대화에 동참하셨으나 그들은 예수님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저희의 눈이 가려져서 알지 못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16절).

눈은 마음의 창이요 몸의 등불이라고 합니다. 눈이 가리어지면 아무것도 볼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18절). 

바로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느냐고 물으면서 우리는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33년 생애를 알고, 그의 약속을 알고, 그의 수난을 알고,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하신 것을 알고 있으나 슬픈 빛을 띠고 낙심하여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으니, 이는 아는 것이 아니고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17절). 

그들은 예수님을 길 가는 한 나그네로 여겼지만 머물러 섰다고 했습니다. 관심을 가진 데서부터 첫 대화가 시작되었으며, 이 대화 속에 예수님과의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이신 줄을 몰랐으나 무엇인가를 이분에게서 배우며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이들은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같이 하시니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28~29절)

관심 있는 대화에서 시작된 예수님과의 만남은 강권하여 매달림으로 영접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을 전해 주시는데 마음이 뜨거워진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깨닫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길을 걸었으며, 그 길은 엠마오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함께 떡을 뗄때에 그가 예수님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이는 성도의 교제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떡을 떼는 성도의 교제 속에 사랑은 깊어지고 이해가 두터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사명입니다. 

성경은 집에서 홀로 읽어도 진리를 깨우칠 수 있으며 라디오의 방송 설교를 들으면서도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나의 구주로 믿어지려면 서로 은혜를 나누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간증과 믿음의 만남 속에서 예수에 대한 확증이 굳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코이노니아이며 성도의 교제입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을 만났을때 그들은 엠마오에서 예루살렘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비겁에서 담대한 신앙으로 바뀌었습니다.

 

/한강장로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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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말씀] 엠마오에서 예루살렘으로 (눅24: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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