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금수강산
정이녹의 임마누엘(21)
우리나라 금수강산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이 확연히 구분되어 아름답다. 봄은 검은 땅에서 젖은 나뭇잎 밀어 올리며 파란 연둣빛 새싹들이 돋아나고, 개나리 진달래는 일단 꽃부터 먼저 피워내고, 여름이면 초록빛 세상, 가을이면 산마다 오색 단풍 가득 차고, 겨울이면 흰 눈이 펑펑 내린다.
서른 번의 가을을 회색빛 안개에 젖은 파리에서 가을인지 봄인지 그날이 그날 같은 곳에서 지내면서 이웃 사는 친구들에게 자랑한다.
우리나라는 봄은 진짜 봄이고, 여름은 엄청 더워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가을은 파란 하늘이 높고 청명, 겨울은 매서운 추위가 코끝을 날리지만, 햇빛이 쨍하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고 열심히 이야기하는 내게 일곱 살 손자가 말한다.
“할머니 다 좋은 거 아니에요, 봄엔 황사가 있고 여름은 너무 덥고 겨울은 너무 추워요 ”
“그렇긴 하지만 지금은 가을이고 우리나라 가을은 세계 최고야, 하늘이 높고 맑고....”
“그런데 가을에도 나쁜 게 있어요 너무 좋은데 너무 짧아요 ”
손자는 이번 가을을 일곱 번째 맞을 터인데
우리나라 가을이 좋은 것을 알고 있구나.
서울의 가을이 짧은 것 같아도, 가을 벌판은 풍성하다.
여름내 만발한 배롱나무꽃들이 시들어 한 잎, 두 잎 떨어질 때쯤이면 들판의 벼들은 황금빛으로 노랗게 여물어지고, 한 해 동안 열심히 일한 농부는 배롱꽃 지는 것을 보며 구수한 햅쌀밥 냄새를 맡는다. 추곡기가 바쁘게 오가며 벼들은 베어지고 추수가 시작된다. 논고랑 틈에 끼어 양분을 나누어 먹던 가라지는 알곡과 구별되고 알곡만 곳간에 들어간다.
우리나라 금수강산 가을이 어느덧 지나가고 있다.
/한강교회 권사·수필가